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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1년 1월 21일 16시 2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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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제’ 10년의 장기호황을 이끌어 왔다고 평가받는 그린스펀 의장은 과연 어떤 존재인가.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움직이는 자유시장경제라는 미국 경제에 ‘그린스펀의 손’은 너무 잘 보이는 것은 아닐까. 선문답같이 애매모호하게 들리는 그의 말 한마디에 좌지우지되는 국제금융시장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그의 영향력이 커질수록 미국 경제와 세계 경제에 오히려 해가 될 소지는 없는 것일까.
금리인하 같은 정책수단은 앰풀주사처럼 즉시 효과를 나타낼 수 있지만 부작용이나 후유증이 장기간에 걸쳐 ‘정부 실패’로 나타날 수도 있다. 자유시장경제론의 태두인 밀턴 프리드먼 교수는 시장개입은 ‘잘해야 본전, 최악의 경우 생산성에 역행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그린스펀 의장과 FRB가 반복적으로 시행하는 금리 수준의 미세조정은 경기순환의 자연적 흐름을 교란해 경제시스템의 자기교정능력을 해칠 수 있다.
미국 시장의 불안정성은 어찌 보면 그린스펀 의장과 FRB가 자초한 것일 수도 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FRB는 98년 하반기에 금리를 세 차례에 결쳐 0.75% 포인트 인하했는가 하면 그 뒤 경기가 과열될 수 있다는 진단에 따라 지난해 5월 말까지 여섯 차례에 걸쳐 모두 1.75% 포인트의 금리인상을 단행했다.
그러나 과도한 금융긴축은 지난해 3·4분기 이후 닥친 유가상승과 맞물려 급격한 경기침체를 불러왔고 나스닥 주가는 최고치 대비 50% 이상 하락하는 대폭락을 기록했다. 결국 금년 초 금리인하로 다시 방향전환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미국 경제의 최장기 호황을 연출하는 것처럼 보이는 그린스펀 의장의 모습은 ‘정부’가 ‘시장’을 선도하고 있다는 대중적 오해를 불러일으키지 않을까 우려된다. ‘살아있는 생명체’와도 같은 경제는 인간의 관점에서 보면 경기의 부침을 보이는 등 불안정한 속성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이런 불안정성을 치유(?)한다는 명분으로 채택되는 각종 정책은 마치 약효가 불분명한 항생제를 남용하는 경우처럼 장기간에 걸쳐 시장경제를 약화시킬 수 있다.
구조조정의 부진, 경기침체 등 이중고를 겪고 있는 우리 경제계에도 ‘한국의 그린스펀’에 대한 갈구가 있을지 모른다. 미국 경제의 장기호황의 원동력은 그린스펀 의장의 개인적 역량보다는 기술혁신과 생산성 향상을 위해 노력하는 미국인들의 전반적인 역량에서 나온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시장을 대체할 어떠한 권위나 전문적 리더십도 존재할 수 없음을 인정하고 시장경제의 창달만이 우리 경제의 장래를 밝게 할 수 있다는 믿음을 새롭게 할 때라고 생각한다.
정몽준(현대중공업 고문·국회의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