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민병욱/ 아시모프의 한

  • 입력 2001년 1월 20일 17시 15분


아이작 아시모프라면 누구나 인정하는 훌륭한 소설가이자 생화학자다. 우주, 생명, 원자 등 어려운 과학 얘기를 일반인도 알기 쉽게 유려한 필치로 써내려간 책이 200권이 넘었다. 글이라면 자신있던 그 아시모프도 고등학교 때 작문교사로부터 엄청난 수모를 당했다고 한다. 첫 수필을 발표하던 날 그 교사는 낭독을 중단시키고 "도저히 들어줄 수 없는 썩어빠진 문구만 나열했다"며 그의 글을 조롱했다. 학생들은 고소하다는 듯 깔깔댔고 아시모프는 참을 수 없는 모욕감에 젖어 자리에 앉아야 했다.

▷절치부심하던 아시모프는 몇 달후 '참으로 상큼한' 글을 하나 썼다. 작문선생은 이 글을 교내잡지에 실어주었다. 생애 처음으로 자신의 글이 활자화된 기쁨에 아시모프는 지난 굴욕도 잊고 작문선생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러갔다. 그런데 이번에도 그는 조롱조로 야비한 말을 퍼부었다. "잡지를 편집하려면 내용과 상관없이 짤막한 글이 필요해서 실었을 뿐이니 너무 좋아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70세때 쓴 자서전에서 아시모프는 "나는 사람들을 미워해본 적이 없지만 그 선생만은 증오한다"고 적었다.

▷어린 가슴에 얼마나 한이 맺혔던지 "내 저서와 나에 대한 신문기사를 가지고 타임머신을 타고 그때로 돌아가 그 선생에게 '이걸 어떻게 평가하는가. 당신은 어떤 학생을 데리고 있었는지도 몰랐지 않은가. 나에게 따뜻한 위로 한마디만 했더라도 내가 자서전을 통해 이렇게 당신을 비난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했을지 모른다"고 쓰기도 했다. 우리가 아무 생각없이 불쑥 뱉어내는 가시 돋힌 말들이 때로는 타인에게 얼마나 큰 상처를 주는가를 웅변해주는 일화다.

▷정치권의 말들이 요즘 더욱 거칠어졌다. 인신공격성 발언이 난무하고 국민이 심한 모욕감을 느낄 만한 말도 거침없이 내뱉고 있다. 상처를 주는 정도가 아니라 난도질하는 듯한 저질표현도 아무 여과없이 쏟아낸다. 대통령이나 야당총재는 물론이고 그 어떤 정치인도 말의 폭력, 독설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독설이 독설을 낳아 상처투성이가 되어서도 헐뜯기만 일삼는 정치인들을 어떻게 퇴출시킬 방법은 없을까. 연휴때 곰곰 생각해볼 일이다. <민병욱 논설위원>minc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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