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이규민/겨울바다의 '영웅'들

  • 입력 2001년 1월 18일 18시 40분


얼음이 떠다니는 겨울 바다나 강물에서 인간이 생존할 수 있는 시간은 얼마나 될까. 전문가들의 주장에 조금씩 차이가 있긴 하지만 짧게는 4분 길게는 23분 정도에 불과하다고 한다. 체온이 30도 이하로 내려가면 신체의 모든 기능이 정지되기 시작해 사람은 잠들듯 죽음에 이른다고 한다. 영화 타이타닉에서 남자 주인공 디카프리오가 연인을 선체 파편에 태우고 30분도 넘게 한겨울 바닷물에서 버티고 있는 장면은 실제로는 한여름 멕시코 자바섬에 마련된 300m길이의 초대형 수조에서 촬영된 데 불과하다.

▷해상 조난을 당해 겨울 바다에 뛰어들어야 하는 상황이 눈앞에 벌어지면 사람은 죽음보다 추위의 공포를 우선 생각한다는 심리학 보고서도 있다. 타이타닉호 사고 때 여자와 어린이를 먼저 태우던 구조보트에 7명의 남자 승객이 여장을 하고 몰래 끼어들어 구조됐는데 그들은 한결같이 상상되는 추위를 견디지 못해 저지른 행동이었다며 후회했다. 여기에서도 겨울 바다의 공포를 읽을 수 있다.

▷17일 아침 매서운 추위 속의 서해에서는 자칫 65명의 소중한 인명이 겨울 바다에 희생될 뻔했다. 인천∼백령도를 운항하는 여객선이 화재로 전소돼 순식간에 바다 속으로 사라졌지만 승객과 승무원은 단 한 명의 희생자도 없이 모두 구조됐다. 침착하게 대처한 승객들도 장하지만 탑승 경찰관의 차분한 판단과 해군의 신속한 대응은 칭찬받을 만하다. 불과 5분 만에 사고 현장에 도착해 민첩하게 승객을 구조하는 해군의 모습은 93년 서해페리호 사고 당시 해경이 낡은 경비함 때문에 50분 후에나 구조에 나서 285명이 희생됐던 때와 비교할 때 해상기동력이 참으로 많이 성장했다는 느낌을 준다.

▷날이 새면 계속되는 여야간 상살(相殺)의 정치판과 답답하게 얽혀 있는 경제상황이 겨울 바다처럼 차갑게 국민의 마음을 얼어붙게 하고 있는 때에 전해진 우리 해군의 완벽한 구난작전 소식은 한줄기 훈훈한 봄바람이다. 싸움도 잘 하고, 구난도 잘 하는 해군 장병들에게 믿음과 감사의 뜨거운 박수를 보낸다. 우리 사회에 이들처럼 묵묵히 제 할일 다하는 ‘영웅’들이 있기에 세상은 아직 살 만하지 않은가.

<이규민논설위원>kyumlee@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