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DNA가 바뀌고 있다/下]"평가 공정해야 경쟁력 향상된다"

  • 입력 2001년 1월 16일 18시 55분


“30대 가장인 남자 직원이 억울하다며 눈물을 펑펑 쏟을 때면 너무 당혹스럽습니다.”

차등 성과급제를 시행하고 있는 롯데백화점의 장수현 인사담당 매니저. 그는 평가작업이 끝나면 하위 등급인 D(10%) E(5%)를 받은 직원들과 개별면담을 한다. 장매니저는 이 자리에서 “상사가 나를 객관적으로 평가해주지 않는다”며 울먹이는 직원들과 자주 만나게 된다.

외환위기 이후 국내 기업들이 연봉제를 대거 도입하고 이를 뒷받침하는 신평가제를 실시하고 있으나 이에 따른 부작용도 적지 않다.

인사컨설팅 전문업체 타워즈페린의 박광서 한국지사장은 “한국기업은 어떤 제도를 유행적으로 도입하는 것에는 빠르지만 그 제도를 운영하는 소포트웨어에 대한 관심이 모자란다”며 “직장인의 일생을 좌우하는 인사제도를 정교한 계획도 없이 함부로 바꾸다가는 조직이 일순간에 무너지기 쉽다”고 말했다.

▽직원 참여가 성공의 필수조건〓국내기업 대부분이 임금을 깎는 ‘방편’으로 연봉제를 도입한 것이 현실이다. 신평가제도가 과거 평가제도와 맞지 않다 보니 미국의 제도를 바로 적용하고 있으나 종업원은 소외되는 곳이 많다.

평가제도 특징 비교
 동양식서양식
적용국가한국, 일본(직능제 가미)미국, 유럽
최근 경향미국식 평가제 급속 도입동양에서 영향을 받아 팀워크평가제 가미
특징집단주의, 온정주의, 연공서열 강조개인주의, 업적주의, 실적과 능력 강조
중요평가항목태도, 조직충성도, 능력실적 최우선, 능력
원하는 인간형표준형 인간형, 추진력을 갖춘 순응형창조적 인간형, 전문가형
장점고도성장기 조직이 계속 성장할 때 유리, 이직이 적음, 모든 업무를 아는 제너럴리스트 육성에 유리우수한 인재에 대한 동기부여, 외부인력 영입이 쉽다, 전문가 육성에 유리
단점하향 평준화의 위험, 능력이나 실적보다 연고주의에 지배되는 경향조직내 위화감 조성, 하위등급자 불만, 이직이 많음

삼성경제연구소 장상수 박사는 “직원들이 평가기준을 만드는 데 참여하지 못하고 또 자신들이 인정하지 않는 기준에 의해 평가를 받는 것은 기업의 경쟁력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직원들이 우선은 따라가겠지만 결국 생산성도 떨어지고 조직이 붕괴되기 쉽다.

신평가제를 도입한 한 기업의 홍보실 직원들은 언론에 유리한 기사가 나갔는지 여부에 따라 실적 평가를 받는다. “홍보실 직원의 능력이나 노력과 상관없는 기사가 대부분인데 이런 잣대로 실적을 평가를 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는 것이 직원들의 불만.

직무분석, 즉 어떤 일이 회사에 기여도가 높은지, 특정업무를 하는 데 필요한 노하우는 어느 정도인지 분석도 하지 않고 인사평가를 하다보니 주요부서의 1등과 별로 하는 일도 없는 부서의 1등이 똑같은 평가와 임금을 받는 모순도 벌어진다.

박광서 사장은 “연봉제라 해서 미국 기업이 똑같은 평가 및 보상제도를 가졌다고 생각하는 것은 착각”이라며 “기업의 사정, 전략, 직장내 각 업무의 특성, 기업문화에 따라 제도와 운영 시스템이 달라야 한다”고 말했다.

▽관리자, 평가 훈련 받아야〓신평가제 도입 후 직원들이 가장 불만스러워 하는 부분은 ‘평가가 공정하게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경총 노동경제연구원 양병무 박사는 “한국의 관리자들은 하위등급을 주기 싫어하고 승진대상자에게 의도적으로 높은 고과를 주거나 자신의 개인 선호도에 따라 고과를 주는 등 온정주의, 연공서열주의, 연고주의를 버리지 못하다 보니 제도운영상 많은 부작용이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과 유럽 기업들은 관리자들에게 체계적인 평가자 훈련을 실시한다. 국내 기업에서는 평가자 훈련을 체계적으로 실시하는 회사가 별로 없다. 상당수 미국 회사에서는 관리자가 공정한 평가를 하지 못한다고 입증되면 아예 관리직에서 박탈된다.

신평가제의 핵심인 ‘피드백(feed―back)’과정이 허술한 것도 심각한 문제. 어떤 기준과 근거에 의해 고과가 결정됐는지, 장단점은 무엇인지 지적해야 하는데 “나를 믿으라”며 피드백 과정을 무시하는 경우가 다반사. 직원에게 고과를 통보한 후 바로 연봉계약서에 도장을 찍으라고 재촉하는 것이 한국 관리자들의 평균적인 모습이다.

이의신청 제도도 제대로 운영되지 않는다. 한국적 기업문화에서 직원이 회사에 평가결과를 놓고 이의신청을 하기가 쉽지 않고 설사 용기를 내서 이의신청을 해도 잘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모 보험회사에서는 작년에 5건의 이의신청이 있었지만 한 건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성신여대 경영학부 박준성 교수는 “연봉제와 신평가제도의 장점이 발휘되기 위해 꼭 필요한 절차들을 무시한 채 그저 제도만 도입한 기업이 적지 않다”며 “최고경영자들이 연봉제와 신평가제에 대한 더욱 정확한 이해가 있어야 제자리를 잡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임숙기자>arteme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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