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가 흐르는 한자]正治(정치)

  • 입력 2001년 1월 16일 18시 48분


孔子에 대해서는 세속적인 관찰도 필요하다. 아마도 그만큼 인생을 비참하게 살았던 사람도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세 번째 첩의 아들로, 그것도 ‘野合’으로 태어나 早失父母(조실부모)하고 아내와 자식이 먼저 죽어 나가는 것을 보아야 했다.

그는 또한 政治에 무척 목말라했던 사람이었다. 애초 貴族들의 창고나 정원, 전답을 管理하는 말단 공무원으로 출발했지만 나이 35에 조국 魯나라의 정치에 환멸을 느껴 제 1차 列國周遊(열국주유)에 나선다. 그 뒤 귀국하여 나름대로 노력해 보지만 당시 실세들의 협잡과 전횡은 정치판이 그리 간단치 않다는 사실만 실감시켜 줄 뿐이었다.

다시 그가 정치에 환멸을 느끼게 된 것은 20년이 지나서의 일이다. 참다 못한 그는 보따리를 다시 쌌다. 14년 간 일곱 나라를 떠돌아다녔던 유명한 ‘轍環天下’(철환천하)다. 때로 양식이 끊겨(絶糧) 아사 직전까지 갔는가 하면, 몰골이 하도 초라하여 ‘喪家之狗’(상갓집 개)라는 비아냥까지 들어야 했다. 하지만 노력도 헛되이 고생만 실컷 하고 나이 일흔에 가까워 귀국하지만 몸은 이미 늙어 있었다. 결국 그는 자신의 이상을 제대로 실현해 보지도 못한 채 5년 뒤에 죽고 만다. 이를테면 그는 철저하게 ‘실패한’ 정치인이었던 셈이다.

그가 14년간 이곳 저곳을 기웃거렸던 이유는 오직 하나 ‘제대로 된 정치’ 한 번 해보고 싶다는 일념 때문이었다. 그것은 쉽게 말하면 ‘正治’다. 즉 ‘바르게’ 다스려서 백성들로 하여금 수긍할 수 있도록 하는 정치다. 한 번은 魯나라 哀公(애공)이 물었다. ‘도대체 내가 어떻게 정치를 해야만 백성들이 수긍할 것 같소?’ 이에 대한 공자의 대답은 ‘바른 것(直)으로 굽은 것(枉)을 바로 잡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백성들은 수긍하지 않을 것입니다’였다.

여기에서 필요한 것으로 그는 지도자의 信義가 전제돼야 함을 강조했다. 제자 子貢(자공)이 治國의 요건을 묻자 식량과 軍隊, 信義 3가지를 들면서 그 중에서도 信義를 가장 중시했다는 逸話(일화)는 지금도 위정자들이라면 귀담아 들어야 할 것이다.

도대체 信義없이 어떻게 나라를 다스리고 국민을 승복하게 할 수 있다는 말인가. 현재 우리나라 政治를 보노라면 지하의 孔子가 또 다시 통탄하지 않을까 모르겠다. 정말로 ‘상갓집 개’ 같은 몰골을 보여서야 되겠는가. 위정자들이여, 제발 ‘正治’ 좀 하라!

鄭 錫 元(한양대 안산캠퍼스 교수·중국문화)

sw478@email.hany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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