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인터넷에는 희망이 흐른다…희귀질병 아픔나누며 치료희망

  • 입력 2001년 1월 11일 18시 57분


7년 전. 초등학교 4학년생 딸이 갑자기 쓰러졌다.

3년간 원인을 모르다가 겨우 알게 된 병명은 ‘멜라스(MELAS)’. 세포 내 미토콘드리아의 유전자 이상으로 세포가 에너지를 생성하지 못하는 희귀질병이다. 병명은 알았지만 병원은 도움이 되지 않았다. 얼마 후 아들마저 쓰러졌다. 이번에는 기억력이 크게 떨어졌다. 멜라스는 모계로 유전되는 질병. 똑똑하고 인기 많던 아들은 ‘왕따’를 당하다 최근 자퇴했다.

‘백방으로’ 수소문해봐도 국내에는 멜라스를 연구하는 의사가 없었다. 비슷한 처지의 환자가족들도 찾지 못해 아픔을 공감하고 위안해줄 사람도 없었다. 아버지는 ‘내가 직접 한의사 자격증을 따겠다’며 한의학에 매달려보았다. 용하다는 무당을 불러 굿까지 해봤다.

2년 전 어느 날 아버지는 전에 가입한 미국의 E메일그룹 사이트(www.egroups.com)에서 한 통의 메일을 받았다. 서비스를 개편하니 이용해달라는 내용. 혹시나 하는 생각에 검색어에 ‘melas’를 입력했다. 놀랍게도 그곳에는 멜라스 E메일그룹이 있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가입을 했다. 기대도 안한 이 ‘인터넷의 지푸라기’는 오프라인에서 몇 년간 애를 써도 얻지 못했던 큰 힘이 됐다.

세계에 단 두 개밖에 없다는 멜라스연구소의 정보, 증상을 완화시키는 비타민처방, 약물실험 참가자 모집, 아마존에서 취급하는 관련서적, 외국 멜라스학회의 최신발표 내용, 한의사가 조언한 추천음식과 금지음식 등이 인터넷 편지로 날아왔다.

증상에 대한 새로운 사연, 최근 진단받은 환자, 쓰러지는 횟수가 잦아진다는 이야기, 그에 대한 위로 등 ‘동병상련’의 소식이 인터넷을 타고 흐른다. “같은 아픔을 가진 사람들끼리의 위로는 희망으로 이어집니다. 상대에 대한 격려는 나에 대한 위안도 되죠. 나는 멜라스라는 병명도 알았고 영어와 인터넷이 익숙해 외국 E메일그룹에도 가입할 수 있으니 행운이에요.” 그는 얼마 전 아이들을 미국에 데리고 가 임상실험에 참가해보기도 했다. 결과는 성공적이지 않았지만.

정보를 접할수록 ‘해볼 수 있는 것이 있다’는 점에서 속수무책일 때만큼 답답하지는 않았다.

그는 “국내에도 온라인커뮤니티가 활성화되면서 소중한 모임들이 생겨날 것 같다”고 덧붙였다.인터넷이 ‘모든 희망을 잃었다’고 생각하는 이들에게 새로운 희망을 줄 수 있다는 기대다.

<김승진기자>sarafi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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