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민병돈/윤리적 강자가 진정한 장군

  • 입력 2001년 1월 10일 18시 33분


지난해 6월 일어난 후방 사단장의 부하장교 부인 성추행 사건이 잊혀지기도 전에 이번에는 전방 사단장의 여군장교 성추행 사건이 일어나 우리를 경악케 한다.

나에게는 현역시절에 어쩌면 실수할 수도 있었을, 그러나 다행히도 원만하게 넘긴 나 혼자만 기억하는 경험들이 있다.

육군본부에 근무하던 시절 나의 사무실에 배치된 한 여군 하사관의 ‘순수한 친절’이 피곤했던 나에게 ‘어깨 주무르기’로 나타났을 때 나는 50대 초반의 건강한 ‘남자’였다. 그래서 나는 그 여군의 ‘순수한 친절’을 감당할 만한 자신이 없어서 미안했지만 그 친절을 사양했다. 그가 겸연쩍어하지 않도록 배려하면서.

또 그보다 더 젊었던 대령시절에는 나의 사무실에 배치된 여군 타자수(하사관)의 미모 때문에 나의 시선과 정신이 자꾸 흐트러짐을 알게 됐다. 그래서 나는 그를 다른 곳으로 옮기도록 했다. 옮긴 직후 그가 나에게 한 말 한마디는 나를 몹시 부끄럽게 만들었다. 그의 아버지가 나와 같은 또래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나를 아버지처럼 생각했는데 나는 그를 ‘여자’로 보았으니….

장군의 성추행 사건은 나의 현역 시절에도 간혹 있었다. 다만 그때는 그것이 세상에 알려지지 않고 당사자만 조용히 전역 조치되는 것으로 끝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정부는 군 간부의 1.55%인 여군 비율을 5%까지 높인다는 방침이다. 이렇게 되면 군대에서 이성간의 접촉이 지금보다 3배 이상 더 빈번해질 것이고 그렇게 되면 성추행 사건이 더 빈번하게 일어날 가능성도 없지 않다.

이런 사건을 방지하는 데는 법규나 제도보다 오히려 각 개인의 인격적 성숙을 바탕으로 한 이성적(理性的) 자제에 기대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본다. 그러나 이런 견해가 옳다고 한들 인간의 성적 욕구 내지 충동에 이성적 자제가 가능할 정도의 인격적 성숙을 이루기가 또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1980년대 중반 이후 수백명의 미국 가톨릭 신부들이 에이즈 관련 질병으로 숨졌으며 현재도 수백명이 에이즈 바이러스에 감염돼 있는 등 미국 가톨릭 신부들의 에이즈 사망률이 일반인의 4배를 웃돈다”는 외국 언론의 보도도 있었다. 이는 인간의 1차적(원초적) 욕구인 성적 욕구 내지 충동이 그만큼 억제하기 어렵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군은, 진정한 장군이라면 따뜻한 가슴과 함께 차가운 이성도 갖고 있어야 한다. 군대에서는 그 조직과 임무의 특성상 부하는 상관에게 순종적이다. 때와 장소뿐만 아니라 남녀를 막론하고 부하들은 상관에게 고분고분하고 친절할 것을 요구받는다.

이런 수직적 인간관계에서 상관은 항상 따뜻하면서도 냉철함을 잃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만사를 문제의식을 가지고 바라봐야 한다. 문제의식이 있는 사람의 눈에만 문제가 보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강한 장군을 원하고 있다. 어떤 사람이 강자인가. 자신의 욕구를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사람,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기는 사람이 진정한 강자이다.

민병돈 (전 육사 교장·예비역 육군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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