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진단]자전거도로에 자전거는 없다?

  • 입력 2001년 1월 5일 18시 59분


“주차장이 돼 버린 자전거도로를 누가 이용합니까. 근처에 자전거도로임을 알리는 표지판도 찾아볼 수 없고….”

4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초동의 한 대형할인점 앞. 인근 보도에 설치된 보행자 겸용의 자전거도로를 따라 유모차를 끌고 가던 주부 이경희씨(32)는 할인점 앞 자전거도로를 ‘점령’한 주차차량들과 맞닥뜨렸다. 보도의 남은 공간도 대형트럭에서 내려놓은 짐들이 차지해 유모차는커녕 사람도 지나갈 수 없는 상태.

결국 차량들이 쌩쌩 달리는 옆차로를 연방 흘끗거리며 인도 쪽 차도로 바짝 붙어 걸음을 옮길 수밖에 없었다. 이씨는 “선만 그은 뒤 제대로 관리도 하지 않는 자전거도로가 무슨 소용이 있느냐”고 불만을 토로했다.

‘자전거도로에는 자전거가 없다?’ 서울시가 도심 교통난 해소를 위해 97년부터 의욕적으로 설치한 자전거도로가 잘못된 입지선정과 관리부재로 ‘무용지물’이 되고 있다. 시는 2002년까지 500억원의 예산을 들여 700여㎞의 자전거도로를 완성, 현행 1%의 자전거 교통분담률을 3%까지 끌어올린다는 계획을 수립해 지난해까지 491㎞ 구간의 정비를 마친 상태.

그러나 이중 상당수가 주차차량이나 가판점들에 자리를 빼앗기거나 가로수, 화단 등 각종 시설물에 ‘점거’ 당한 상태.

실제로 이날 서초구 강남역사거리∼양재역 3㎞구간의 자전거도로는 인근 은행과 상가건물 앞에 세워진 차량들로 주차장을 방불케 했다. 또 보도 위의 아스콘이 군데군데 벗겨진 곳도 있었다.

인근 양재역∼학여울 6.2㎞구간도 주차차량과 함께 상가에서 내놓은 각종 판매대와 포장마차들이 진을 치고 있는 실정. 취재진이 1시간 동안 두 지역을 돌아봤지만 자전거를 이용하는 시민은 단 한 명도 발견할 수 없었다. 인근 J아파트 주민 진모씨(42)는 “자전거 도로가 오히려 더 위험해 아이들이 자전거를 타고 아파트단지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한다”며 “이용객 하나 없는 자전거도로는 대표적인 예산낭비 사례”라고 꼬집었다.

강북지역도 별반 다를 게 없다. 3년 전 설치된 종로구 혜화동로터리∼대학로 1㎞구간의 자전거도로는 인근 상가 앞의 주차차량과 입간판, 쓰레기통, 화단들로 곳곳이 ‘단절’돼 제 기능을 상실한 지 오래다. 보도 위의 경계선은 낡을 대로 낡아 거의 지워져 있었고 자전거보관대는 텅텅 빈 상태. 관할구청측은 “예산을 들여 도로를 설치해도 차량매연과 곳곳의 장애물 때문에 이용시민이 거의 없다”며 “향후 관리방안에 대해 고심 중”이라고 말했다.

서울시관계자는 “도심구간을 따라 자전거도로를 설치하다보니 이용에 다소 불편이 있는 것이 사실”이라며 “올해부터 불법주차 등에 대한 강력한 단속과 함께 보수관리에 각별히 신경을 쓰겠다”고 말했다.

<윤상호기자>ysh100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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