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송영언/시간강사의 겨울

  • 입력 2001년 1월 5일 18시 22분


대학 시간강사들은 자신을 ‘보따리장수’라고 부른다. 강의를 찾아 이 대학, 저 대학을 기웃거린다 해서 나온 자조적인 표현이다. 모든 것을 아내에 의지한다고 해서 ‘등처가’라 부르기도 한다. 부모의 도움 없이는 살 수 없다는 측면에서 ‘캥거루족’에 편입시키기도 한다. 이들 시간강사는 완전 실업자가 되는 겨울방학이 괴롭기만 하다. 하긴 방학이 아니라고 해서 행복할 것도 없다. 평소에도 ‘반실업자’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전국 대학의 시간강사는 줄잡아 5만5000여명. 대부분이 박사다. 대학 전임교원 4만5000명보다 1만여명이 많다. 그러나 이들의 처지는 딱하다. 생계비도 안되는 강사료에 재직증명서나 신분증 발급도 안되고 의료보험 혜택도 없는 그야말로 ‘일용잡급직’이다. 그래서 이들 중에는 “왜 공부를 했나” “박사 학위를 반납하고 싶다”고 후회하는 사람도 많다.

▷한국대학교육협의회가 내놓은 ‘2000년 대학교육지표’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 각 대학은 강의의 37.2%를 시간강사로 때웠다. 98년은 32.6%, 99년은 35.9%였다. 인건비 절약을 위해 시간강사에 의존하는 비율이 해마다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매년 늘어나는 교수 1인당 학생수(39.7명), 도서관 1좌석당 학생수(5.7명) 등과 함께 한국 대학의 부끄러운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강사료는 시간당 평균 2만3210원. 평균적으로 주 6시간의 강의를 맡으니 월 수입은 60만∼70만원 정도다. 이 같은 여건에서 충실한 강의란 애초부터 불가능한 것이 아닐까.

▷시간강사 대부분의 희망은 대학교수가 되는 것이다. 백면서생(白面書生)이나 다름없는 이들은 어쩌면 대학 밖으로 나가는 것이 두려울지 모른다. 하지만 가뭄에 콩 나듯 어쩌다 하나씩 생기는 교수 자리에 그처럼 많은 사람들이 목을 매고 있는 것은 귀중한 젊음과 지식의 낭비다. 교육 당국이나 대학들의 교수 확충, 처우개선 노력과 함께 대학 밖에도 고급 인력이 폭넓게 둥지를 틀 수 있도록 사회적인 뒷받침이 있어야 한다. 구조조정과 실직의 칼바람 속에 대학 밖이라고 특별한 희망이 보이는 것은 아니지만…. 이래저래 겨울이 추운 시간강사들이다.

<송영언논설위원>younge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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