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윤득헌/웃음달력

  • 입력 2000년 12월 29일 18시 47분


‘3월4일―꽃다지 꽃망울이 올라옴. 따뜻해지자 냉이 다시 꽃피우다… 3월22일―청띠신선나비가 돌담 위에 날개를 펴고 앉아 햇볕을 즐김… 4월3일―버들잎벌레가 짝짓기… 4월26일―꼬마물떼새가 알을 낳다… 5월7일―토끼풀천국…’ 환경운동 시민단체가 거주지역 생태공원의 한해 이야기를 사진을 곁들여 꾸민 달력 내용이다. 생물의 움직임이 보이고 속삭임이 들리는 듯한 이 달력은 사람들의 마음을 넉넉하게 한다.

▷한 해가 지날 때면 새해 달력 얘기가 심심찮다. 기상달력, 천문현상을 소개한 달력, 문화달력, 시각장애인을 위한 점자달력, 기(氣)나 음력 등에 초점을 맞춘 ‘기능성 테마달력’등등. 그뿐만 아니다. 서기 2001년과 북한의 주체연호인 ‘주체90’이 나란히 적힌 달력도 나왔고, 인터넷에서 이미지 파일로 작성된 북한 달력 세 종류를 무료로 다운받을 수 있다는 소식도 있다. 정치인들도 자신을 선전하는 달력을 만들어 돌린다. 어쩌면 가장 멋없는 달력이 정치인들의 것일지 모른다.

▷새해 달력을 걸기에 앞서 지난 한해 동안 달력에 적어놨던 메모를 되살펴본다. 밝은 것보다는 어두운 게 많다. 주가폭락, 구조조정, 파업, 도산, 금융혼란, 의료계 집단 폐업, 인사편중 시비, 현대사태, 구제역 파동, 벤처사기꾼, 난개발, 원조교제…. 물론 남북정상회담 및 이산가족상봉과 대통령의 노벨상수상 같은 흐뭇한 일도 없지는 않았지만.

▷밝은 일, 어두운 일이 얽히고설키는 게 세상의 이치일 터이다. 하지만 한 해의 끝에서까지 ‘정치를 잘못해 송구하고 반성한다’는 종류의 말은 다시 듣지 않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은 어쩔 수가 없다. 내년 이맘때는 “아, 좋은 일이 많은 한 해였군. 잘못된 일은 별로 없군”이라는 말과 함께 느긋하게 한 해의 기록을 뒤적이게 되기를 기대한다. 옛 은사를 모신 날, 사회봉사를 한 날, 보너스 받은 날 같이 추억거리도 되고 미소도 짓게 되는 일도 되새기면서. 달력에 적어 넣을 흐뭇한 일을 많이 만들도록 다짐하면서 새해를 맞자.

<윤득헌논설위원>dhy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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