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김재홍/콜린 파월

  • 입력 2000년 12월 20일 18시 44분


미국의 차기 부시행정부에서 대외정책을 책임질 콜린 파월 국무장관 지명자는 몇 개의 ‘최초’를 기록한 인물이다. 1989년 미국 역사상 최초로 흑인출신 합참의장에 임명된 데 이어 이번에 역시 최초의 흑인 국무장관이 됐다. 그를 합참의장에 임명했던 사람이 조지 부시 대통령이었는데 이번에는 아들인 조지 W 부시 대통령당선자가 그를 국무장관으로 발탁했다. 우리나라 같으면 가신(家臣)관계 아니냐는 비판이 나올지 모르지만 미국 여론은 대체로 그의 경력을 들어 국무장관감으로 무난하다고 보는 것 같다.

▷미국에서 국무장관직은 명성있는 국제정치학자에게 돌아가는 것이 보통이었다. 헨리 키신저가 대표적이고 지금의 매들린 올브라이트도 그런 예이다. 군 장성 출신이 국무장관이 되기는 2차대전 직후의 조지 마셜과 레이건 행정부 당시 알렉산더 헤이그에 이어 파월이 세 번째다. 그는 뉴욕의 빈민가에서 태어났고 학벌도 화려하지 않지만 유니폼을 입은 군사전문가로서 그 직무에 충실했고 합리적이었기에 좋은 점수를 얻었다.

▷그가 군인으로서 안보정책 전문가의 안목을 기른 것은 1981년 레이건 행정부의 국방부에 들어가서였다. 당시 캐스퍼 와인버거 국방장관의 수석비서관으로 있던 리처드 아미티지와 파월 장군은 ‘군사력을 배경으로 한 미국의 대외전략’이라는 관점에서 말이 통했다. 파월과 친구가 된 아미티지는 부시행정부에서 중요한 안보책임자로 중용될 것이 틀림없어 보인다. 그는 작년 2월 대북 포용정책을 바탕으로 페리 보고서 초안이 만들어졌을 때 그에 비판적인 입장에서 공화당쪽의 대북정책을 작성했던 인물이다.

▷그러나 파월은 군사력을 상시적으로 도구화하는 데 반대한다. 이것이 학자출신과 다른 점이다. 베트남전에 일선 지휘관으로 참전했던 그는 군인들이 목숨을 걸고 수행하는 전쟁을 정부가 결정하려면 그만큼 신중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는 1973년부터 74년까지 주한미2사단의 대대장으로 동두천에서 근무한 경험도 갖고 있다. 미국의 사활적 국익수호를 위한 선별적인 군사개입만 지지하는 ‘파월 독트린’이 북―미관계와 남북관계에 어떤 영향을 줄지 주목된다.

<김재홍논설위원>nieman96@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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