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노벨상 빛흐린 '동원된 환영'

  • 입력 2000년 12월 15일 19시 22분


정부가 노벨평화상을 받고 귀국하는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을 환영하라고 업무중인 공무원들을 거리로 내몬 것은 한마디로 시대의 시계바늘을 거꾸로 돌리는 한심한 작태다. 그런 발상을 한 ‘구시대적 관료’야 세계적인 상을 받고 돌아오는 대통령에게 그만한 환영은 당연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본능적인 ‘관료적 처신’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과잉 충성’은 결국 대통령을 욕보이고 노벨상 수상의 의의마저 떨어뜨리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보다 본질적인 우려는 이런 시대착오적 의식이 정부 고위 관료의 머릿속에 가득 차 있는 한 개혁은 여전히 구호에 그칠 것이란 점이다.

물론 국민이 대통령의 노벨상 수상을 축하하는 것은 바람직하다. 하지만 축하는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자발적인 것이어야 한다. 거기에 강제성이 개입되면 축하하려던 마음조차 돌아서는 것이 인지상정(人之常情)이다.

그런데 엊그제 교육부 및 서울시 공무원들은 태극기를 들고 거리로 몰려나가야 했다. 그것도 근무시간 중이었다. 특히 서울시의 경우, 연도 환영인력 동원을 위해 시 행정자치국장 주재로 각 구청 담당국장을 소집해 구별로 200명 이상을 차출하고 서울시청과 가까운 종로구 중구 등에서는 인원제한 없이 되도록 많이 불러내자는 대책회의까지 가졌다고 한다. 그래놓고도 “공무원 중에 나중에 불평하지 않을 사람만 나오라는 단서를 붙였다”느니 “강제성은 전혀 없었다”고 둘러대고 있으니 도대체 지금이 어느 시절인지 어이가 없을 지경이다.

그렇게 1만5000여명이나 되는 인원을 동원해 대통령을 환영한 결과 돌아온 것은 시 공무원과 시민의 빗발치는 비난이라고 하니 어찌 대통령을 욕보인 것이 아니겠는가.

민주당 소속 일부 의원들이 국회 상임위 회의도중 대통령을 영접한다고 회의장을 빠져나가 서울공항으로 달려간 것은 강제동원된 공무원의 경우보다 더욱 한심한 꼴이다. “국회의원은 국회를 지키는 게 가장 중요하다”는 김대통령의 지론을 어겼으니 그들 또한 대통령을 욕보인 셈이다.

개혁은 거창한 것이 아니다. 모두가 제자리를 지키며 자기 할 일을 제대로 하는 것이 개혁의 기본이다. 김대통령에 대한 환영열기가 고조되지 않았다면 그것이 바로 민심이란 것을 알아야 한다. 공무원을 동원해 환영한다고 민심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나빠진다. 국정쇄신은 이런 낡은 의식을 바로잡는 데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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