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관중 불러모으기]

  • 입력 2000년 12월 13일 13시 02분


올림픽, 월드컵, 아시안게임은 어쩔 수 없다고 하더라도 국내프로야구를 살리기 위해서는 선수들의 해외진출을 과연 막아야 하느냐는 의문이 생긴다. 이 점에 대해서는 어느 누구도 옳다 그르다 쉽게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국내 선수들의 해외진출을 막는 것은 불합리하며, 설령 막는다 하더라도 이미 수준 높은 해외야구를 접한 국내 야구팬들의 해외야구 선호도는 줄어들기 어려울 것이다.

또한 해외야구를 배운 선수들이 한국에 돌아와 후진을 양성하는 지도자가 된다면 이는 먼 장래로 볼 때 국내 야구발전에 더욱 효과적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당장 관중이 줄어들고 있는 국내 프로야구는 그저 하늘만 바라보며 관중이 들어와 주기만을 바라야 하는가? 다시 홀수 해가 되는 2001년에는 관중이 늘어날 수 있을까? 물론 어느 정도는 늘어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도 분명히 암초는 존재한다. 바로 지역연고제의 실질적인 붕괴에 따른 야구팬들의 가치관 혼돈이 생겨나고 있기 때문이다.

1982년 출범당시 지역고교팀을 기반으로 출발한 국내 프로야구는 이제 우선지명선수 단 1명을 제외하고는 전면 드래프트로 선수를 선발하고 있다. 사실상 완전 드래프트제인 거나 다름없다. 또한 FA제도의 등장과 트레이드의 활성화로 팀의 간판선수가 다른 팀으로 옮기는 경우가 많아졌다

따라서 더 이상 삼성에는 경북선수, 해태에는 호남선수, 롯데에는 경남선수, 한화에는 충청선수가 득세하고 있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이는 미국, 일본처럼 야구선진국으로 가고 있는 바람직한 현상임에 분명하다. 그러나 관중동원이라는 점에서 보면 그리 환영할 만한 현상이라 할 수는 없다.

93년 삼성에 입단해 팀의 간판이었던 양준혁은 99년 해태로 트레이드된 후 올해 다시 LG로 유니폼을 갈아입었다. 그러나 양준혁은 아직도 삼성 팬들에게 인기가 있다. 삼성의 잠실 원정경기에 양준혁이 타석에 들어서면 삼성응원석에서 자발적인 박수와 응원이 나온다. 이는 대구에서도 마찬가지다. 양준혁의 홈런에 대구관중은 열광했고 양준혁은 헬멧을 흔들며 이에 화답했다. 그러나 이는 삼성이 크게 이기고 있거나 크게 지고 있어 승부가 어느 정도 결정된 다음에 벌어진 일이라는 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

아직 국내 관중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팀의 선수가 다른 팀으로 이적했을 경우 응원하는 팀을 바꾸지 않으며 다른 팀을 추가로 응원하지도 않는다. 물론 그 선수가 계속 잘하기를 바라기는 한다. 그러나 그를 보기 위해 경기장을 찾지 않으며 좋아하던 팀의 경기에도 흥미가 줄어들어 경기장을 찾는 횟수가 줄어들고 있다.

그렇다면 방법은 무엇인가.

위와 같은 문제로 트레이드를 줄이거나 이제 겨우 시작된 FA제도를 없애거나 다시 지역연고제를 강화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무엇보다 야구팬들의 역량을 키울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우수선수가 해외로 빠져나가고 간판선수가 다른 팀의 유니폼을 입더라도 야구팬들이 이를 대치할 선수들을 빨리 찾아내 이들이 계속 국내프로야구를 즐기도록 만들어야 한다.

일본의 경우 우리나라 못지 않게 유명선수들이 미국으로 진출하고 있다. 노모 히데오(LA→뉴욕M→밀워키→디트로이트→방출) 요시이 마사토(뉴욕M→콜로라도) 이라부 히테키(뉴욕Y→몬트리올) 사사끼 가즈히로(시애틀)….

내년엔 천재타자라는 스즈키 이치로까지 미국으로 건너간다. 트레이드는 말할 것도 없다. 80년대 세이부 라이온즈의 최고 전성기 시절의 주력 멤버중 아키야마 고지와 구도 기미야스는 현재 다이에 호크스에서, 기요하라 가즈히로는 요미우리 자이언츠에서 뛰고 있다.

그러나 올해 일본야구는 여전히 관중동원에 성공했다. 올림픽을 치르기는 일본도 우리와 마찬가지 였다.

그런 면에서 볼 때 일본의 야구관전 문화는 우리보다 한발 앞서가고 있다. 일본은 고교야구에 대한 열기도 대단하다. ‘고시엔’(甲子園)이 열릴 때면 프로야구 관중이 잠시 줄어들 정도이다.

그러나 한국은 프로야구 출범이후 아마야구의 관중동원은 계속해서 감소 일로를 걷고 있다. 특히 90년대로 들어오면서 80년대까지 어느 정도는 관중을 모으고 있었던 고교, 대학야구의 결승전마저도 외면 당하고 있다.

이에 대한 책임의 일부는 스포츠관련 언론에 있다고 본다. 스포츠관련 언론은 프로야구의 젖줄이 되는 아마야구를 등한시한 채 프로야구에만 스포트라이트를 비췄고 이제는 해외야구 소식에 많은 부분을 할애하고 있다.

박찬호가 등판하는 날이 다가오면 등판 전날부터 스포츠신문은 그에 대한 기사로 1면을 가득 채우고, 등판결과 또한 1면을 할애한다.

일본의 경우 고시엔 보도는 프로야구에 못지 않으며 미국으로 진출한 선수의 경기에 대해 한국처럼 이틀에 걸쳐 1면을 할애하지는 않는다. 이것이 바로 일본야구가 유명선수의 해외진출에도 불구하고 관중동원에 성공하며 자국리그를 지켜나가고 있는 이유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프로야구가 생기기 전인 70년대부터 81년까지의 국내 스포츠신문과 방송을 생각해 보면, 당시 국내 유일의 스포츠 일간지였던 일간스포츠는 최고 인기 스포츠였던 고교야구에 무조건 1면을 할애하지 않았다.

물론 고교, 대학, 실업야구가 동시에 벌어지는 경우가 거의 없기도 했지만, 대학 실업야구도 종종 1면에 실었으며 일본 프로야구에서 활약하던 장훈씨와 백인천씨의 기사는 현재의 해외진출 스타의 기사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작게 실리곤 했다.

또한 방송도 마찬가지였다. 고교야구 외에도 대학야구, 실업야구, 한미대학 친선경기 등을 TV와 라디오에서 자주 중계했으며 장훈씨과 백인천씨의 경기는 아주 드물게 하이라이트 정도로만 있었고 그것도 연속안타 행진이라든지 3000안타 달성 같은 이벤트가 있는 경우에만 볼 수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 있었던 고교, 대학야구의 스타들이 80년대 프로야구 스타로 이어졌으며, 그 영향력은 90년대 초중반의 프로야구 황금기가 탄생하는 원동력이 되었던 것이다.

관중의 역량을 증대시키는 일은 이제 다시 스포츠관련 언론사가 해야 한다.

지금부터라도 고교야구, 대학야구에 대한 기사와 중계를 늘려야 한다. 80년대까지는 그래도 스포츠 일간지에서 고교, 대학야구에 대한 기사를 종종 접할 수 있었으며 중계도 어느 정도는 됐다. 또한 스포츠 뉴스에서 경기결과를 자세히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요즘은 스포츠 신문과 스포츠 뉴스에서 경기 결과는 고사하고 단순한 승패조차도 알기 어려운 경우가 있다. 특히 스포츠 뉴스에서는 그날 마지막으로 벌어지는 경기의 결과는 아예 제쳐놓고 편성하고 있다.

이러한 현실이니 누가 에이스이고 누가 강타자인지, 어느 팀이 강하고 어느 팀이 약한지 제대로 알 수가 없다.

그러니 이들이 신인으로 프로에 들어와도 프로야구팬의 관심을 불러일으키기가 어려우며, 프로에서 알던 선수가 해외나 국내 다른 팀으로 빠져나가면 이들을 대신하여 대리만족을 시켜줄 선수를 찾지 못하여 그저 흘러간 옛 스타들을 그리워하고 있는 실정이다.

90년대 초중반까지의 프로야구 스타는 고교, 대학야구가 어느 정도 언론의 관심을 받았던 80년대의 아마야구 스타들이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된다.

언론에서 자주 고교, 대학야구를 다루어야 야구팬들의 역량이 증대되고 야구에 대한 관심과 지식이 늘어나 야구장으로 발걸음을 돌리게 할 것이다. 물론 이는 단기간에는 효과를 보기 어려운 처방이나 장래를 내다보고 반드시 실행되어야 할 부분이다.

앞으로 몇 년 더 지난다고 해외진출이 지금보다 줄어들 가능성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기초가 튼튼하지 않는 건물은 무너질 수 밖에 없다. 그동안 한국 프로야구는 외형적인 발전과 성장을 거듭해왔으나 이의 젖줄이 되는 아마야구는 점점 설 자리를 잃어왔던 것이며 이를 되살리는 작업은 언론의 관심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다.

아무리 프로구단이 연고지의 중학, 고교팀을 지원해도 언론에서 이들의 경기를 다루지 않으면 야구팬들은 점점 국내 프로야구를 외면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제 인터넷 대중화시대를 맞아 인터넷 방송들이 잇달아 생겨나고 있다. 이 중에는 스포츠 중계를 담당하는 방송도 있지만, 과연 이들이 얼마나 아마야구에 관심을 보여줄지 궁금하다. 아마야구가 지금처럼 계속 언론에서 외면당한다면 한국프로야구의 관중 수는 홀수해가 되는 2001년에 일시적인 소폭 상승세를 보였다가 월드컵과 아시안 게임이 열리는 2002년에 다시 처참한 좌절을 맛보게 될 것이고 이를 되돌리기는 지금보다 더욱 힘들어질 것이다.

오승환 <동아닷컴 e포터> form76@m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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