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신금 영업정지 도미노]中企·영세상인 자금난 가중

  • 입력 2000년 12월 12일 18시 51분


“어음할인요? 대한민국에 은행에서 어음할인되는 기업이 얼마나 됩니까. 그나마 어음할인해 주던 금고마저 일절 손을 내젓고, 사채업자들은 담보를 가져오라고 하니….”(A백화점 납품업자 L씨)

계속된 예금인출로 각 금고가 경쟁적으로 대출금의 회수에 나서고 있다. 이에 대한 고통은 고스란히 신용이 부족한 영세상인과 중소기업에 돌아가고 있다. 영세상인과 중소기업체들이 그마나 편안한 마음으로 드나들던 금고마저 잇따른 예금인출로 사실상 ‘영업정지’를 선언하자 이들은 제도권 금융기관의 기능이 사실상 끝났다는 ‘극언’까지 서슴지 않는다.

실제로 신용금고 업계가 존망의 기로에 몰려 있다. ‘이기호 쇼크’로 인해 업계 상위의 우량금고가 줄줄이 문을 닫음으로써 신용금고 업종이 없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감이 높아지고 있다. 98년부터 종합금융회사들이 국제통화기금(IMF) 체제의 ‘주범’으로 몰리면서 몰락했던 것과 비슷한 길을 걷는 것 아니냐는 불안감이 팽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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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세 상인과 중소기업의 자금난 몸살〓서울 강남의 A금고. 11일 하루 동안 약 240억원의 대출금을 회수했다. 금고에 한파가 불어닥치기 전인 9월의 회수 금액에 비교하면 3배에 가까운 금액이다. 이 금고의 관계자는 “자금을 빌렸던 사람도 답답하겠지만 우리부터 살아야할 것 아니냐”고 말했다.

10월말 동방금고의 불법대출 이후 예금인출이 계속되자 서울 강북의 B금고는 11월말부터 만기가 된 대출금을 일괄 회수하고 있다. B금고의 J이사는 “신규 대출은 특별한 경우가 아닌 이상 아예 없다”며 “만기가 돌아온 어음할인, 부동산대출 등에 대해서도 100% 회수를 원칙으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금고가 최근 20일 동안 회수한 금액은 150억원에 이른다.

게다가 올 들어 굵직한 종금사들이 문을 닫으면서 금고는 중소기업의 기업어음(CP)과 진성어음 등의 할인업무도 대신해왔으나 이마저 중단하고 있다. J이사는 “6개월 전부터 맡아온 어음할인 등 종금사 업무를 최근 잇따른 예금인출로 일시 중지했다”며 “정부의 적극적 대책으로 예금인출이 멈추지 않는 한 영업을 재개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신용금고 구조조정 급물살〓금융감독위원회는 당초 부실금고 20여개에 대해 공적자금 4조3000억원을 투입해 정리한 뒤 내년부터 신용금고를 ‘저축은행’으로 전환시킬 방침이었다. 그러나 최근 들어 정부의 이런 스케줄은 바뀔 수밖에 없게 됐다. 일부 신용금고 사장들은 “이렇게 무너질 바에야 스스로 영업권을 반납하자”는 극단론마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금융전문가들은 단계별 신용금고 구조조정 방안을 제시한다. 한화증권 진영욱 사장은 “단기적으로 신용금고의 옥석(玉石)을 가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문제된 금고를 과감히 정리함으로써 살아남은 금고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믿음을 줘야 한다는 것. 이를 위해선 예금보험공사나 한국은행에서 신용금고연합회를 통해 신용금고에 유동성을 충분히 공급해야 한다고 밝혔다. 정기영 삼성금융연구소장은 “신용금고는 현재 체제로는 예금이 부분보장되는 내년 이후에는 살아남기 힘들 것”이라며 “저축은행이나 지방은행으로 전환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홍찬선·이나연기자>hc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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