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이종수/‘경찰 균형 인사’ 빈말이었나

  • 입력 2000년 12월 12일 18시 42분


어쩌다 나라꼴이 이 지경에까지 이르게 되었는가? 학력을 허위 기재한 특정지역 출신의 한 경찰간부가 2년8개월 만에 3단계나 뛰어올라 15만 경찰의 2인자 자리에 올랐다가 이틀 만에 옷을 벗은 이 사건을 국민은 어떤 시각에서 보고 있는가.

▼기회있을 때마다 주장하더니▼

김대중 대통령이 기회 있을 때마다 균형인사를 다짐했는데도 불구하고 이런 지역편중 인사가 끊이지 않고 계속되는 것은 아랫사람들이 대통령의 뜻을 정면으로 거역해서 그런 것인가, 아니면 대통령이 빈말을 하고 있는 것인가. 많은 국민은 집권세력이 정권 재창출을 위해 의도적이고도 정략적으로 권력기관의 편중인사를 계속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하고 있다.

이번 박금성 서울경찰청장 인사파문 사건만 본다면 출세 지향적인 한 경찰간부의 욕심이 빚어낸 단순한 해프닝으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좀더 진지하게 들여다보면 공공의 안녕과 질서를 담당하는 국가기관에서 이렇게 학력을 조작하는 상식 밖의 사건이 가능했던 것은 조직의 기강해이 문제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또한 법집행기관의 권위 상실과 경찰공무원의 심각한 사기저하 문제를 우려할 수도 있다.

이런 문제들도 결코 가볍게 넘길 수 있는 사소한 사안은 아니다. 그러나 문제의 심각성은 일반 시민들이 보다 거시적 관점에서 지역편중 인사에 집착하는 정권의 도덕성 상실과 신뢰의 위기, 나아가 국가 통치체제의 위기라는 차원에서 이 문제를 보고 있다는 점이다.

김대통령은 불과 한달 반 전인 10월 25일 경찰의 날 기념식에서 “경찰의 직무에 대한 의욕이 샘솟기 위해서는 인사가 공정해야 할 것”이라며 지역편중 인사의 문제점을 공개적으로 지적하였다.

현 정권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균형인사를 주장해 왔으나 특정지역 편중인사는 날이 갈수록 심화돼 왔다. 무대 앞에서는 공기업의 인사시스템을 바꾸기 위해 사장 공모제를 실시한다고 부산을 떨면서 장막 뒤에서는 낙하산 인사가 계속돼 온 것이 사실이다. 물론 과거 정권에서의 인사 불균형을 바로잡기 위한 조치라는 항변도 가능할 것이다.

정치적 사회적 문제에 대한 현 정부의 대응방식은 독특하다. 김대중 정권의 행정부는 문제가 발생하면 ‘이전 정부에서 저지른 문제’라고 덮어씌우거나, ‘언론의 왜곡 과장 보도’나 ‘야당 총재의 대권욕 때문’이라는 등의 사회적 편견을 동원해 문제의 본질을 호도해 버리는 데 능하다.

그리고 문제를 해결하려 하기보다는 타락한 일부 지식인을 동원해 대응논리라는 궤변(?)을 개발하고 특정한 구전(口傳) 홍보집단을 통해 여론을 조작하는 방식으로 대응해 왔다. 이렇게 하면 국면전환이 가능하다는, 집권층의 몸에 밴 사고방식이 문제의 진정한 해결을 어렵게 하는 요인이 돼왔다. 이러한 대응방식으로 시민의 건전한 판단의식을 마취시키기에는 이미 내성이 너무 강해졌고, 이런 ‘꼼수’는 정권의 도덕성과 신뢰의 상실을 더욱 부추길 뿐이다.

김대통령의 거듭된 균형인사 다짐과 개혁결단이 냉소로 받아들여지고 노벨평화상 수상과 남북정상회담의 성과마저 흔쾌하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이유는 바로 심각한 신뢰의 상실에서 기인한다. 정권의 도덕성이 의심받는 상황에서 정부가 어떻게 개혁을 추진하고 각종 이익집단의 요구를 ‘고통분담’ 차원에서 자제하자고 설득할 수 있겠는가. 정권의 도덕성 상실과 신뢰의 위기가 이대로 방치되면 결국 국가통치체제의 와해라는 비극을 초래하게 될지도 모른다.

▼도덕성-신뢰의 위기 막아야▼

정부의 신뢰성 상실에 의한 국가통치체제의 위기상황을 극복하고 특정지역의 정부가 아니라 진정한 ‘국민의 정부’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집권층의 비상한 각오가 있어야 한다. 먼저 검찰과 경찰 그리고 국가정보원 같은 권력기관이 제도에 의해 정상적으로 작동할 수 있도록 인사가 혁파돼야 한다.

이런 혁신적인 조치 없이는 정권의 도덕성과 신뢰는 회복되지 않을 것이며 현재의 난국은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할 것이다.

이종수(한성대 교수 ·경실련 정부개혁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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