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박승재/‘과학교육’ 弔鐘은 울리나

  • 입력 2000년 12월 10일 18시 43분


국제과학학력 비교에서 초등학교는 괜찮지만 중학교는 떨어지고 고등학교는 더욱 떨어진다는 것은 위기의 한가지 신호일 뿐이다. 어린이는 ‘돌아가는 팽이는 어째서 쓰러지지 않는가’ ‘아기 고양이는 어떻게 해서 엄마 고양이를 닮는가’ 등등의 질문을 끝없이 하고 상상력을 펼치는데 학교에서 과학을 배울수록 재미없고 어려워 과학을 공부할 마음이 없어지는 것이야말로 심각한 과학교육의 위기가 아닐까?

과학교육의 첫걸음인 질문은 없어지고 시험점수만을 위해 요약해 달라고 하며 무엇인지도 모르고 외우며 정답을 찍는 요령으로 대학에 가려는 학생이 있으니 한심한 일이다.

과학교육 위기의 원인에 대해서는 교육과정과 입시제도에서 차지하는 과학교과의 낮은 위상, 과다한 학급당 학생 수, 실험조건의 미흡, 과학교사의 신념과 실력부족을 지적하는 사람도 있겠고, 그것보다는 과학교사의 사기가 땅에 떨어진 것 등을 꼽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진정 이것들이 근본원인이라고 넋두리만 하다 조금 지나면 잊어버리고 말 것인가.

교육부 고위간부 중에 과학을 공부한 사람이 없고 과학교육국이 산업교육국 산하의 과학교육과로, 그리고 과학교육 전담자로 약화되더니 지금은 그나마 없어졌다. 이것이 파급돼 시도교육청의 과학기술과와 과학교육원이, 그리고 학교에서는 과학주임이 없어졌다.

내년부터 시행되는 제7차 교육과정에서 초중학교의 과학시간은 주당 4시간에서 3시간으로 줄었고 금년도 교사임용고시에 서울을 비롯한 많은 시도가 과학교사를 1명도 뽑지 않는다. 컴퓨터 몇대 나눠주고 과학교육이 잘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책임자도 있으니, 우리는 과학교육의 어떤 정책 행정 장학을 기대할 수 있는가.

과학교사를 양성하는 많은 대학교수들은 기초 또는 응용과학 연구비를 받아 기초과학 연구에 몰두하고 전공과목을 구태의연하게 강의하는 것으로 명분을 세울 뿐 초중고교 과학교육은 잊고 있는 것이 아닌가.

과학교과의 교육과정과 입시제도에서의 위상, 과학교사의 실력과 사기, 참다운 탐구실험의 방법과 시설 등이 부각되는 것은 일선학교 현장이지만 그것을 좌지우지하는 것은 행정부와 대학 관계자가 아닌가.

우리 교육계의 비극은 학교 현장과 행정부 그리고 대학의 불행한 악순환에 있는 것 같다. 현장교사는 행정책임자와 대학교수를 원망하고, 행정 관계자는 나라 살림 형편도 모르고 허튼 소리를 한다고 대학교수와 교사를 한심하게 여긴다. 교수들은 교사들이 잘못 가르친다고 나무라며 교육행정가들이 과학을 이해하지도 못하면서 권력을 휘두른다고 못마땅해하는 악순환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우리 모두 자기 반성을 시작으로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 과학교육의 위기는 과학의 위기요 교육의 위기로, 결국은 국가의 위기로 치달을 것이다. 과학교육에 가벼운 위기 징후가 있는 정도라면 다행이겠지만 방심하면 심각한 위기를 정말로 당하지 않을 것이라고 누가 장담할 것인가.

(박승재 서울대교수·물리교육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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