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경호원과 함께 등교하다니

  • 입력 2000년 12월 8일 18시 42분


친구들로부터 ‘왕따(집단따돌림)’를 당한 초등학교 6학년 어린이가 사설경호원과 함께 학교에 다니고 있다는 보도는 충격적이다. 수업이 시작되면 교실 밖에서 기다리다 쉬는 시간이 되면 다시 교실로 들어가 학생을 살피는 경호원의 모습은 교육현장의 ‘왕따’현상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보여준다.

교육부에 따르면 99년 전국 초중고교에서 ‘왕따’로 피해를 본 학생은 3152명이고 가해 학생은 5182명. 올해도 이와 비슷한 수준일 것이란 설명이다. 하지만 드러난 사례는 ‘빙산의 일각’일 뿐 실제로는 이보다 훨씬 더 많을 것이라는 게 일선교사와 학부모들의 얘기다. 한국청소년상담원이 지난 가을 전국 초중고교생 24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학생들은 학교폭력(21.9%)과 집단따돌림(19.8%)을 학교생활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꼽았다.

‘왕따’현상이 늘어나면서 피해학생이 전학 휴학하거나 정신질환 또는 자살에 이르는 경우까지 생기고 있다. 자녀를 ‘왕따’가 없는 곳에서 교육시키고 싶다며 이민을 간 사람도 있다.

요즘의 ‘왕따’는 그 양태가 지극히 비정하고 폭력적이라고 전문가들은 진단한다. 예전에는 신체적 약점이 있거나 공부를 못한 경우 등이 ‘왕따’의 대상이었으나 요즘은 공부를 잘하거나 모범생인 경우도 포함된다고 한다. 그래서 학생들 사이에서는 왕따를 당하지 않으려면 ‘잘난 척’ ‘가진 척’ ‘예쁜 척’하지 말라는 말까지 있다.

학생들이 마음놓고 학교에 가는 것은 학교교육의 가장 중요한 기본이다. 다른 친구들로부터 맞거나 따돌림을 당할까봐 학교 가기가 불안하고 초조하다면 학교란 과연 어떤 의미가 있을까. 어린 시절부터 폭력에 대한 공포감을 느끼고 자란 학생은 정상적으로 크지 못하고 어른이 돼서도 비정상적인 삶을 살 가능성이 높다. 이런 기본적인 문제조차 해결되지 않는다면 이 땅의 교육은 미래가 없다.

우리사회의 어른들이 모두 내자식도 ‘왕따’가 될 수 있다는 생각으로 문제해결에 나서야 한다. 무엇보다 교사들의 적극적이고 빠른 해결의지가 중요하다. 이를 위해 교육여건의 개선도 시급한 과제다.

피해자 가족만이 아니라 가해자 가족도 나서야 한다. 이런 측면에서 8일 서울지법이 ‘왕따’시킨 학생의 부모에게 배상책임을 지운 것은 의미 있는 판결이다. 학생들에게 남을 괴롭히면 반드시 법적 사회적 처벌을 받는다는 것을 인식시켜주는 것도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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