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홍찬식/'뷰티풀 라이프'

  • 입력 2000년 12월 7일 18시 54분


일본의 TV드라마 ‘뷰티풀 라이프’와 우리 소설 ‘가시고기’는 장르가 다르긴 하지만 최근 각 나라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모았다. 이 두 작품은 죽음이라는 같은 소재를 다루면서도 상당한 시각차를 보인다.

먼저 ‘뷰티풀 라이프’ 스토리. 주인공 교코는 하반신 마비로 휠체어를 타고 시한부 인생을 살아가는 20대 여성이다. 그녀에게는 항상 곁을 지켜주는 자상한 연인이 있지만 아무리 뜨거운 사랑도 죽음의 벽을 뛰어넘을 수는 없다. 예정된 죽음의 시간이 다가올수록 그녀는 더욱 의연해진다.

죽기 직전 그는 더없이 편안한 표정으로 말한다. “모든 것이 새롭고 소중해 보여. 산들거리는 봄바람도, 따스한 햇빛도, 푸른 나뭇잎까지도. 이 세상을 떠나면 더 이상 볼 수 없는 것들이잖아. 비록 오래 살진 못했지만 내 인생은 특별해.”

이 ‘특별하다’는 한마디로 그는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나야만 하는 억울함이나 분노 따위를 ‘간단히’ 날려버린다. 짧든, 길든 자기 인생과 스스로를 사랑하고, 또 사랑하려고 애쓴다.

다음은 ‘가시고기’ 이야기. 백혈병 아들을 둔 30대 아버지가 혼신의 힘을 다해 아들을 살리고 자신은 ‘새끼의 부화를 지키다 생명을 잃는’ 수컷 가시고기처럼 암으로 세상을 떠난다는 내용이다.

이혼 후 아들을 떠맡게 된 젊은 아버지는 아들의 간호를 위해 재산과 체력을 소진하고 수술비를 마련하기 위해 마지막 수단으로 자신의 각막까지 팔게 된다. 죽음 직전까지 몰렸던 아들은 아버지의 희생에 힘입어 골수를 이식받아 기사회생을 하고 엄마가 있는 프랑스로 떠난다.

소설은 아버지가 죽기 전에 친구에게 털어놓는 말로 끝난다. “그 아이를 세상에 남겨 놓는 이상은, 죽어도 아주 죽는 게 아니래.” 그는 오로지 자식을 위해서만 존재하며 그 자신은 어떤 의미에서 ‘없는’ 것이나 다름없다.

‘뷰티풀 라이프’의 인생관이 ‘나’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면 ‘가시고기’의 주인공은 ‘가족’과 ‘혈연’을 최고의 가치로 여긴다.

우리 사고방식으로는 당연히 ‘가시고기’ 쪽에 마음이 끌리게 마련이다. ‘가시고기’가 눈물샘을 자극하고 높은 판매고를 기록한 것도 우리가 비슷한 정서를 공유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둘 가운데 어느 쪽이 더 합리적이고 미래지향적이냐에 대해서는 좀더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과도한 혈연 중심, 가족 중심 사회는 그 폐쇄성 때문에 벌써 오래 전에 시대에 맞지 않는 것으로 결론이 내려졌다.

여러 예를 들 것도 없이 가족 중심의 재벌 경영이 벽에 부닥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요즘 ‘가족 해체’를 걱정하는 사람이 많지만 반대로 어려운 시기를 거치면서 가족이기주의가 더욱 공고해지는 측면도 간과되어서는 안 된다.

또 한가지는 인간의 존엄성, 행복에 관한 것이다. 가족에 대한 희생이 본인 의사와 상관없이 사회적 분위기에 의해 마치 이데올로기처럼 강요된다면 그것은 또다른 ‘다수의 횡포’다. 세상은 냉혹한 경쟁과 시장논리로 치닫고 있다. 두 작품의 극명한 차이는 이 변혁의 시대에 어떻게 사는 것이 진정 ‘아름다운 인생’인지 되새겨보게 한다.

<홍찬식 문화부장>chansi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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