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커지는 ‘진승현 비자금’의혹

  • 입력 2000년 12월 5일 18시 51분


MCI코리아 대표 진승현(陳承鉉)씨의 ‘비자금 의혹’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자고 나면 수십억, 수백억원씩 불어나 비자금 500억원설까지 제기됐다. 아직은 의혹 수준이지만 지금까지 드러난 진씨의 금융사기와 구명로비 행태로 미루어 볼 때 그가 엄청난 규모의 비자금을 조성했을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검찰은 어제 수백억원 규모의 비자금설에 대해 일단 사실이 아니라고 밝혔다. 그러나 이번 사건의 경우 로비에 필요한 은밀한 자금과 공개적인 사업자금을 구분하기 힘들다는 점에서 성급하게 판단을 내릴 사안이 아니다.

사실 진씨는 열린금고, 리젠트종금, 한스종금 등 각종 금융회사를 사금고(私金庫)처럼 이용했다. 별도의 비자금이 필요없었는지도 모른다. 그는 불법적인 방법으로 수천억원을 동원했고 이 돈을 언제든지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었다는 얘기다.

더군다나 진씨가 불법대출받은 2500여억원 가운데 1300여억원은 아직 행방이 밝혀지지 않고 있다. 이 돈의 사용처는커녕 그가 모 건설업체에서 불법적인 방법으로 수백억원을 빼돌렸다는 새로운 의혹이 제기됐다. 화의절차가 진행중인 건설업체에 수십억원을 지원해 경영권을 장악한 뒤 이 회사 이름으로 수백억원을 빼돌렸다는 것이다.

진씨 구명운동과 관련해 국가정보원 출신의 MCI코리아 전회장 김재환(金在桓)씨와 검찰수사관 출신 김삼영(金三寧)씨가 구속됐고 현직 국정원 고위간부의 연루의혹이 불거졌으나 이는 정관계(政官界) 로비의혹의 한 가닥에 지나지 않는다는 게 우리의 판단이다. 일이 터진 뒤 이들이 비로소 구명운동에 나섰다고 보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진씨는 사업과정에서 불법 탈법을 일삼았고 따라서 평소에도 ‘보호막’이 필요했을 수밖에 없다. 아세아종금 인수당시 신인철(申仁澈) 당시 감사가 마당발이라는 소문을 듣고 그에게 20억원의 로비자금을 건넸다는 사실이 이를 뒷받침한다.

무엇보다 진씨가 4·13 총선을 앞두고 여야 중진들에게 거액의 정치자금을 제공했다는 정치권의 공방을 그냥 넘겨선 안된다. 지난 11월초 김영재(金暎宰)금융감독원 부원장보가 한 국회의원의 사무실을 찾아 “한스종금의 비자금이 100억원이 넘는다”고 말했다는 것은 예사로운 일이 아니다. 한스종금에서 돈을 받은 혐의로 구속된 김부원장보가 진씨의 정계로비를 암시한 것이라고 본다.

검찰이 더 이상 정치권에 휘둘려선 안된다. 그러기 위해선 진씨의 불법자금을 끝까지 추적해 진실을 밝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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