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득헌의 스포츠세상]'중계권 싸움' 룰은 지켜라

  • 입력 2000년 12월 4일 18시 36분


만일 텔레비전이 스포츠를 완전히 무시한다면 어떻게 될까. 프로야구나 프로축구 등은 나름대로 새로운 통신 시스템을 구축할 성싶다. 각자 또는 여럿이 방송설비를 갖추거나 폐쇄회로를 이용할 수도 있겠다. 또 인터넷 중계도 생각해 볼 터이다. 그렇지만 스포츠팬은 답답해 할 수밖에 없다. 앞의 것은 비싼 이용료가, 뒤의 것은 이용 불편이 문제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텔레비전과 스포츠. 역사를 따질 일은 아니로되 스포츠가 텔레비전의 성장에 비례해 발전하고 대중화된 것은 분명하다. 올림픽이나 월드컵의 원활한 진행도 중계료 덕이 크고, 세상 사람들이 스포츠를 화제로 떠올리는 것도 텔레비전의 생생한 현장 중계에 따른 것이겠다. 그러니 하늘에서 맺어진 결혼이 있다면 그것은 텔레비전과 스포츠일 것이라는 말도 생기지 않았겠는가.

사실 텔레비전의 스포츠 중계는 방송사나 스포츠뿐만 아니라 우리에게도 관심사다. 물론 우리도 중계권에 따라 오고 가는 돈의 액수에 무관심할 수는 없다. 하지만 스포츠를 편하고 즐겁게 시청할 수 있을 지가 관심의 초점이다. 어느 방송국이 언제 무슨 종목을 누가 중계하고 해설하는지 등등.

방송사의 스포츠 중계권 싸움이 불꽃을 튀기고 있다. 싸움은 MBC가 방송3사 합동방송 원칙에 관계없이 미국프로야구와 4년간 계약한 데서 비롯됐다. MBC로서는 박찬호 선수의 경기 국내 독점 중계권을 얻었지만 KBS와 SBS는 결국 이에 정면대응을 했다. KBS는 국내 프로야구를 4년간 그리고 프로축구를 5년간 독점 중계할 수 있는 계약을 했고 KBS 및 SBS는 프로농구를 다년간 중계할 수 있는 계약을 했다.

이 싸움이 어디까지 갈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그것을 경쟁으로 보기 때문에 질책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또 중계권 싸움은 돈을 많이 내는 쪽이 이기는 경우가 많고 스포츠도 더 많은 돈을 챙기는 효과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방송사의 싸움이 스포츠에 그리고 시청자에게 미칠 영향에 대해서 불안하게 생각한다.

방송사는 ‘스포츠는 돌 위에 새겨진 규칙과 함께 부여된 것이 아니다’라는 말을 신봉하는 성향이 있는 까닭이다. 실제 스포츠를 독점 중계하는 방송사는 입맛에 맞게끔 영향력을 행사한 경우도 있고 그럴 가능성도 높다. 경기 시간의 변경은 대표적 사례일 것이다. 시청자가 가장 우려하는 점은 역시 선택 또는 비교의 기회를 가질 수 없다는 점이다. 울며 겨자 먹기 식의 중계를 보게 될 수도 있다는 말이다.

방송사에 스포츠 독점 중계권 확보는 승리일 것이다. 그 승리가 비판과 질책의 대상으로 돌변하지 않기를 바란다.

윤득헌<논설위원·체육학박사>dhy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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