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정훈의 책사람세상]'책 사는 날' 만들자

  • 입력 2000년 12월 1일 19시 59분


11월 26일 ‘녹색연합’은 상품생산 과정에서 발생하는 환경오염, 노동문제, 불공정거래 등에 대한 재인식을 촉구하기 위해 이른바 ‘아무 것도 사지 않는 날’(Buy Nothing Day) 캠페인을 벌였다. 1992년 캐나다에서 처음 시작된 이 캠페인은 올해의 경우 38개국이 참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에서 쇼핑중독증에 걸린 것으로 분류할 수 있는 사람이 대략 6.6%에 이른다는 조사도 있는데, 여러 모로 의미 있는 캠페인이다.

책이라는 물건도 나무의 대량 희생을 전제로 하는 상품이니, ‘아무 것도 사지 않는 날’에서 예외가 될 수는 없을 것이다. 일년에 하루라도 아무도 책을 사지 않는 날이 있다면, 적지 않은 나무의 희생을 줄일 수 있을 법도 하다. 그러나 정 반대의 날도 생각해 봄 직하다. 요컨대 ‘책 사는 날’(Buy Book Day) 또는 ‘책 선물하는 날’ 같은 것이 일년에 하루라도 있었으면 한다.

물론 지금도 ‘세계 책과 저작권의 날’이 있기는 하다. 1995년 제22차 유네스코 총회에서 지정된 4월 23일로, 이 날은 셰익스피어와 세르반테스가 세상을 떠난 날이기도 하다. 1997년 4월 23일에는 우리나라의 정보통신부에서, 이 날을 기념해 공모한 디자인 작품 최우수작을 기념우표로 발행하기도 했다. 그러나 보다 많은 사람들이 생활 속에서 피부로 느낄 수 있는 날은 되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가늘고 긴 과자 모양과 날짜의 숫자 모양의 유사성에 기초한 이른바 ‘빼빼로 데이’(11월 11일), 일본의 초콜릿 업체들의 상술에서 비롯되었다는 ‘발렌타인 데이’까지 성황을 이루고 있다. 이런 날들은 그 유래가 어찌되었든지, 젊은 세대의 감성과 생활 양식에 밀착된 날로 자리잡아 가고 있다.

독서 관련 캠페인이나 행사도 일회성 이벤트나 행사를 위한 행사에 그칠 것이 아니라, 생활과 밀착된 즐거운 풍속으로 유도할 수 있는 기획이 필요하다. 일년 중 단 하루만이라도 모든 국민이 서점에서 책을 사는 날, 책을 선물하는 날처럼 아름다운 날도 없을 것이다. 연인끼리, 친구끼리, 부모와 자녀가, 스승과 제자가, 책을 한 권씩 주고받는 날이 될 수도 있으니 말이다.

인기 작가들이 그 날 하루만이라도 모두 나서 일일 서점원 역할을 해도 좋을 것이고, 대통령이 전 국무위원들과 함께 서점에 나가 각자 책을 한 권씩 골라도 좋을 것이다. 올 ‘빼빼로 데이’에는 해당 상품의 품귀 현상까지 빚어졌다고 한다. ‘책 사는 날’에 책 품귀 현상이 일어나기를 기대한다면 지나친 일일까? 책 쇼핑중독증이라면 한 번 단단히 걸려도 좋은 일이 아닐까?(출판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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