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하임숙/대우차 살리기 공은 정부로

  • 입력 2000년 11월 28일 18시 38분


대우자동차 노사가 구조조정 합의라는 한 고비를 넘긴 28일. 노조의 한 간부는 간부진은 협상 때보다 더 착잡한 표정들이다.“허탈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앓던 이를 뺀 기분”이라고 했다. 회사가 부도처리된 지 20일, 노조로서는 “모든 해결의 출발은 노조의 동의”라는 정부 채권단, 특히 여론의 압력을 피할 수 없었다. 기계가 멈추고 협력업체들까지 하나 둘 문을 닫아 회사 자체가 고사위기에 빠지는 상황에서도 명분이 우선이었으나 이제 그 짐을 벗게 된 것이다.

더욱 더 홀가분한 것은 동료들의 비난에서도 조금은 벗어날 수 있게 됐다는 점이다. 노조의 동의서 제출 거부에 따라 끝내를 빌미로 결국 부도처리된 이후 사실 집행부는 설 땅을 잃었었다. 노조원들은 연일 E메일을 통해 “왜 동의서를 써주지 않느냐”며 집행부를 비판했고 공장 문을 닫은 부평과는 달리 제대로 가동되던 창원과 군산공장 근로자들은 “빨리 동의서를 내고 일이나 하자”고 독촉했다. 사무직 근로자들은 “망한 회사에서 구조조정은 당연하다”며 집단사직서를 먼저 내기도 했다.

동의서에 합의한 27일, 합의문을 수용하기까지는 그러나 3시간 넘게 격론이 벌어졌다. “밤을 새워서라도 대의원 한사람 한사람의 의견을 물어봐야 한다” “결국 조합원을 자른다는 얘기 아닌가. 그렇다면 받아들일 수 없다”는 등의 반대론이 만만치 않았다.

“시간이 없다. 어떤 합의문을 내도 감원은 이뤄질 것이다. 일단 받아들이고 어떻게 싸울 것인지 준비를 하는 게 중요하다.” 노조위원장의 당부로 사태는 진정되고 결국 합의문 만장일치 수용 결정이 내려졌다.

공장의 완전한 정상가동에는 아직도 넘어야 할 산이 많지만 일단 공은 채권단과 정부로 넘어간 상태다. 대우차의 기업가치를 높이고 해외매각을 성공시키는 것도 정부와 채권단 몫이다.

“공장의 정상가동을 간절한 마음으로 빌고 있다.” 수염을 채 깎지 못해 꺼칠해진 얼굴을 문지르는 한 노조원에게서 ‘회사 없이는 노조도 없다’는 평범한 사실을 다시 한번 떠올리게 된다.하임숙<경제부>arteme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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