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물영아리오름

  • 입력 2000년 11월 26일 18시 38분


소를 찾아 헤매다가 오름 꼭대기에 이르게 된 젊은이가 탈진해 쓰러졌다. 꿈에 백발노인이 나타나 ‘소를 잃었다고 상심하지 말라. 내가 그 소 값으로 산꼭대기에 큰 못을 만들 터이니 아무리 가물어도 소들이 목마르지 않게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놀라 눈을 떠보니 날은 저물었고 갑자기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이상하게도 옷이 젖지 않았지만 그는 천둥과 번개에 놀라 까무러쳤다. 다음날 아침 정신을 차려보니 산꼭대기가 너르게 패어져 있고 물이 가득 차 있었다. 남제주군 물영아리(水靈)오름에 얽힌 얘기이다.

▷오름이란 아름다운 말은 산과 봉우리를 뜻하는 제주지역의 말이다. 한라산을 제외한 제주 일원에 분포하는 화구가 있는 독립화산체나 기생화산체를 뜻한다. 한라산을 둘러싼 크고 작은 오름의 수는 무려 368개. 오름은 한라산이라는 어머니가 낳은 자식들이라는 말도 그럴듯하다. 하지만 한라산이 제주의 얼굴이라면 오름은 제주의 마음일지도 모르겠다. 오름은 설화나 전설로서 뿐만 아니라 목장으로 또는 생활근거지로 제주민의 생활에 깊숙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제주 지역 고유의 오름이 몸살을 앓고 있다고 한다. 오름에 자라는 식물 및 송이라고 하는 붉은 화산토석이 마구 채취되고, 통신탑이나 송전탑이 산허리를 가로지르는가 하면 분화구내에 영화세트도 들어서고 있다. 또 동아리의 오름 탐사활동과 제주를 더 진솔하게 체험하겠다는 관광객이 늘어나면서 탐방로의 훼손도 심해지고 있다. 오름을 바로 보자는 긍정적 활동도 오름 훼손이라는 부정적 결과로 나타나는 셈이다.

▷물론 오름의 관리는 오래전부터 환경 산림 농정 건설 관광 문화재 등 분야별로 이뤄져왔다. 그러나 체계적이지 못했다. 인공초지 조성이나 식목행사로 자생수종이 영향을 받고 오름의 모습이 변한 것은 하나의 예이다. 오름은 생태학 및 지질학적 가치를 포함해 다양한 가치를 갖고 있다. 그 중 물영아리 오름은 분화구안에 습지가 있고 다양한 식물과 보호야생동물이 서식하는 생태계의 보고이다. 물영아리가 내륙 습지보호지역으로 지정된다고 한다. 백발노인이 다시 나타나 ‘늦었지만 다행이다’라고 할지 모르겠다.

<윤득헌논설위원>dhy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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