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사정 바람 냉소 바람’

  • 입력 2000년 11월 21일 18시 50분


사정(司正) 바람이 불면서 관가(官街)가 ‘납작 엎드렸다’는 보도다.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마지막 결전이라는 생각’으로 감사원 검찰 경찰 등 국가사정기관을 총동원해 비리와 부패를 뿌리뽑겠다고 나섰으니 공직사회가 긴장하는 것은 충분히 예상됐던 일이다.

문제는 납작 엎드린 가운데 터져나오는 불만과 그 밑바닥에 흐르는 광범위한 냉소(冷笑)의 분위기다. 불만은 ‘만만한 게 공무원이냐’는 것이고, 냉소는 ‘정말 사정해야 할 곳은 제대로 했느냐’는 반응이다.

공직사회의 기강을 바로세우고 썩은 부분을 도려내는 것은 필요하다. 그러나 왜 불만과 냉소의 분위기가 팽배한지를 제대로 살피지 못한다면 사정이 그 본래의 목적이나 실질적 성과를 이뤄낼 수 있을지 의문이다. 오히려 과거의 예에서 보듯 공직자들이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엎드려 있는 복지부동(伏地不動)의 양태만 확산시킬 수 있다.

불만과 냉소의 원인을 찾기는 어렵지 않다. 우선은 권력 내부에 대한 불신이다. 최근의 한빛은행 부정 대출, 동방금고사건 등에서 나타난 권력 내부의 비리와 연루 의혹이 말끔히 밝혀지지 못한 데서 ‘도대체 누가 누구를 사정하느냐’는 원초적 불만이 생겨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불만이 해소되지 못하는 데서 ‘해볼 테면 해보라지’하는 식의 냉소가 자리잡게 되는 것이다. 물론 이런 식의 불만과 냉소가 옳다거나 부추기자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사정을 하는 측이 이런 현실을 무시해서는 공직사회의 반발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사정은 상시적 제도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과거 정권에서 그랬듯이 무슨 ‘일제 단속기간’처럼 한번에 해치우는 식의 일과성, 전시성이어서는 국면을 전환하기 위한 정략적 접근이란 오해를 벗기 어렵다. 이럴 경우 ‘기획사정’ ‘편파사정’의 부작용을 일으키기 십상이다.

지금의 검찰이 사정의 중추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을지도 걱정이다. 비록 검찰 수뇌부에 대한 탄핵이 집권여당의 실력저지로 무산됐다고는 하나 사정 주체의 권위와 수사의 공정성이 도마 위에 오른 상황에서 사정의 당위성과 정당성이 힘을 얻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공직사회의 불만과 냉소를 불식시키려면 사정의 엄정한 기준과 형평성 있는 처리가 담보되어야 한다. 그리고 사정의 칼은 먼저 권력내부 및 주변을 겨눠야 할 것이다. 칼은 뽑는 것보다 제대로 쓰는 게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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