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 신간]'만민법', 지구촌 평화의 출발은 '人權'

  • 입력 2000년 11월 17일 18시 42분


□만민법(Law of Peoples) / 존 롤스 지음, 장동진 외 옮김 / 300쪽, 2만원/이끌리오

우리는 성원들의 가치관 인생관 종교관이 서로 다른 다원주의적 사회에 살면서도 공동체적 통합을 위해 최소한의 윤리에 합의할 필요가 있다.

사회의 기본덕목으로서 정의에 대한 현대 정치철학의 담론은 바로 이 같은 요구를 담고 있으며 여기에 중심적 화두를 제공한 대표적 사회윤리학자가 미국 하버드대 존 롤스(John Rawls)교수다.

사회의 기본구조가 갖는 분배적 측면에 주목, 사회정의의 현대적 해석에 주력해 온 그가 수십 년간의 천착을 통해 집대성한 걸작이 바로 ‘정의론(A Theory of Justice)’(1971)이다. 그는 자본주의의 배경적 이념 역할을 하는 공리주의의 지배적 풍토를 비판하고 합리적 선택이론을 통해 재구성된 사회계약론적 정의론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그는 두 번째 저서인 ‘정치적 자유주의(Political Liberalism)’(1993)에서 ‘정의론’의 주장과 연속성을 유지하면서도 다양한 반론을 수용하는 보다 온건한 방법론을 통해 정의론을 재해석한다. 이 책에서는 정의의 원칙이란 ‘가치관 인생관 종교관이 다른 다원주의적 사회 성원들간에 중첩적 합의를 통해 도달하는 최소윤리’라는 생각을 보다 명료히 하며 공적 이성을 통해 이런 합의를 도출하려는 자신의 입장을 ‘정치적 자유주의’라 명명한다.

‘만민법’(1999)은 이상의 두 저서에 나타난 정의관을 국제관계나 국제법에 확대해 적용하려는 시도로 그의 세 번째 저서이자 마지막 저서라 할 수 있다. 그는 한 국가 내부의 정의문제에 비해 국가간의 정의문제는 보다 복잡한 과제이며 우선 국내적 정의론이 성공한다면 이에 적정한 보완을 함으로써 국제적 정의관으로 확대적용할 수 있다고 보았다.

그가 굳이 국제법(Law of Nations)이 아니라 만민법이라고 한 것은 최근 들어 국제정치에서 국민국가 혹은 개별국가의 위상이 대외적으로는 전쟁권에 의해, 대내적으로는 개인의 인권에 의해 제한됨으로써 그 주권이 점차 약화되고 있는 사정을 반영한다. 그는 만만법을 통해 국제질서에서 중심이 주권에서 인권으로 이동되는 추세를 감안해 보다 전향적 관점에서 정의롭고 평화로운 지구공동체를 구상하며, 이점에서 칸트의 ‘영구 평화론’과도 맥을 같이 한다.

크게 3부분으로 구성된 이 책에서 제1부인 ‘이상적 이론의 첫 부분’은 일반적 사회계약의 개념을 합당한 자유주의적 사람들간에 적용, 이들 상호간에 만민법의 합의가 가능함을 보여 준다. 제2부인 ‘이상적 이론의 두 번째 부분’에서는 자유주의적 사회와 더불어 이와 신념을 달리하는 다소 위계적 사회간에 합의 가능성을 논의한다. 제3부인 ‘비이상적 이론’에서는 만민법에 따르기를 거부하는 무법국가 및 불리한 여건으로 고통받는 사회가 만민법에 편입될 수 있는 길을 논의한다.

‘정의론’에서 ‘만민법’에 이르는, 롤스 정의관의 핵심은 시민권에 앞서 인간의 보편적 권리인 불가침의 인권개념이다. 이는 국내정치에 있어서는 물론이고 국제정치에서도, 심지어 국가의 주권마저도 유린할 수 없는 정의의 핵심 개념이다. 이점에서 롤스는 역시 현실 정치가 혹은 정치학자이기보다 정치철학자 내지 정치윤리학자라 함이 합당할 것이다. 롤스의 ‘만민법’은 한국의 국내 정치뿐만 아니라 남북의 만남을 통한 통일 한국에 있어서도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황경식(서울대 교수·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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