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의-약-정 합의 존중돼야

  • 입력 2000년 11월 12일 19시 03분


버스요금이 오르면 승객에 대한 서비스가 좋아져야 하듯이 국민의 의료비 부담이 커지면 의료서비스가 향상돼야 한다. 정부와 의약계가 약사법 재개정에 합의한 이후 실천해야 할 과제는 이렇듯 당연한 것이다.

그러자면 특히 그 명분이야 어떻든 지난 6월 이후 네 차례의 집단 휴폐업 및 파업으로 국민의 불편과 고통은 물론 사회 혼란을 일으킨 의료계는 이제 국민보건 증진을 위해 본연의 역할을 다해야 할 것이다.

의료파행이 의료계의 탓만은 아니다. 준비 안된 의약분업을 강행한 정부의 책임이 더 크다. 임의조제의 관행을 좀처럼 버리지 못한 약계도 책임을 면하기 어렵다. 그러나 ‘국민건강을 위해 제대로 된 의약분업’을 주장해온 의료계가 그 투쟁의 명분을 의료개혁의 실질적 성과로 이어가기 위해서는 ‘네 탓’보다 ‘내 탓’을 돌아볼 수 있어야 한다.

무엇보다 어렵게 이루어진 의―약―정(醫―藥―政) 합의가 의약계 내부 추인 과정에서 다시 뒤집어지는 최악의 상황이 벌어져서는 안된다. 일부 개원의를 중심으로 임의분업 주장이 나오고 있고, 전공의들도 의료보험에 대한 국고지원 방안이 불확실한 점 등에 불만을 나타내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의약계 대표가 합의한 내용이 회원의 반대에 부닥쳐 번복되는 사태가 재연돼서는 결코 안될 것이다. 이번 합의로 전공의들은 병원으로 돌아가고 의대―약대생의 수업거부사태도 끝나야 한다.

사실 이번 의―약―정 합의에서 제목소리를 내지 못한 측은 의료소비자인 국민이다. 그러면서도 그 부담은 고스란히 지게 됐다. 이미 진료비와 의료보험료 인상으로 국민의 의료비부담은 크게 늘어났다. 내년에도 큰 폭의 의보료 인상이 예정돼 있다.

후진적 의료체계를 개선하고 선진국 수준의 의료서비스를 받으려면 의료비 부담 증가는 상당부분 불가피하다. 그러나 국민이 이를 받아들이려면 부담이 늘어난 만큼 의료서비스가 향상돼야 한다.

정부는 의약분업의 세부사항을 하나하나 점검하고 더 이상 시행에 차질이 없도록 해야 한다. 거동이 불편한 노인이나 어린이의 분업 예외 적용 등도 빠른 시일 내에 확정해 혼란이 없도록 해야 한다.

의료계는 투명한 병원경영으로 소비자의 신뢰를 얻어야 한다. 과잉진료행위와 같은 과거 악습과 리베이트비 랜딩비 등 ‘검은 관행’도 끊어야 한다. 약계는 진료행위와 임의조제를 더는 말아야 한다. 의―약―정 합의는 여전히 ‘불안한 출발’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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