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증권가 "투자상담사를 조심하라"

  • 입력 2000년 11월 9일 18시 30분


증권업계에 ‘투상’이란 은어가 있다. 투자상담사를 줄인 말이다.

요즘 증권가에 ‘투상 경계령’이 내려졌다.

500여명의 피해자를 낳은 ‘정현준 게이트’에서 하나증권의 투상인 권모씨가 수백억원대의 고객돈을 유용했다는 혐의로 구속됐다. 3일에는 대우증권 로얄지점에서 투상인 조모씨가 고객돈 33억원을 횡령한 뒤 잠적했다.

증권사들이 대외 이미지 추락을 우려해 발표하지 않은 투상 관련 사고도 적지 않은 실정이다. “대형 금융사고에는 투상이 끼어있다”는 말이 상식처럼 통하고 있다. 물론 대부분의 투상은 고객의 주식투자를 도와주는 긍정적 역할을 한다. 그럼에도 일부 투상들에 의한 금융사고가 잇따르고 있는 만큼 조심할 수밖에 없다. 만사 불여튼튼이다.

▽투상, 왜 문제인가〓일부 투상들이 증권사 이름을 빌려 사(私)금융을 하고 있는 것이 문제다. 정현준 게이트에 관련된 권모씨처럼 고객들로부터 자금을 모아 프리코스닥 종목에 투자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대우증권의 조모씨도 고객돈으로 프리코스닥 주식에 투자했다가 손해를 보자 잠적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일부 투상은 사채업자들에게 고리로 대출해주는 경우도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투상들은 하루에도 몇 번씩 주식을 사고 파는 데이트레이딩을 한다. 매매횟수 때문에 수수료 부담도 크다.

일부 투상들은 이른바 ‘작전세력’과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는 루머도 끊이지 않고 있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투상들은 증권사 정식직원이 아니기 때문에 돈의 유혹에 빠지기 쉽다”고 지적했다.

▽투상과 증권사는 악어와 악어새〓투자상담사는 증권사 지점에서 고객의 주식투자를 대행해 준다. 증권사 영업직원을 제외하고 활동중인 전담 투상은 1500여명에 이른다. 지난해 주식시장이 활황을 나타냈을 때 증권사들이 직원에 대해 주식매매 약정에 따라 성과급(인센티브)을 지급하면서 급증했다. 투상들은 통상 약정 1억원에 25만∼30만원의 수수료를 받는다. 약정이 100억원을 넘을 경우엔 1억원당 40만원을 받는 경우도 있다. 증권사 직원이 사표를 내고 투상으로 변신한 경우도 적지 않다.

투상과 증권사는 악어와 악어새처럼 공생관계에 있다. 약정을 늘리기 위해 약간의 편법과 위법을 하더라도 눈감아 준다. 최근 증권사 지점에서 ‘새끼상담사’가 늘고 있다. 투상이 되려면 1종 또는 2종 자격증을 따야 하는데 새끼는 자격증 없이 주식중개업무를 하는 사람을 가리킨다. 증권사 지점장이나 투상들이 약정을 높이기 위해 편법으로 새끼들을 고용하는 실정이다.

▽반드시 증권사 계좌를 통해 거래〓투자자와 투상 사이에 분쟁이 끊이지 않고 있다. 10월말 현재 금융감독원에 접수된 증권분쟁은 1095건. 작년 같은 기간보다 20.3%나 늘었다. 이중 임의매매와 관련된 분쟁이 39%로 가장 많다. 특히 투상과의 분쟁이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투상과 투자자와의 사적 거래이기 때문에 보호해줄 수단이 마땅치 않다는 것이 금감원의 설명.

조심하는 수밖에 없다. 우선 투상을 믿더라도 거래는 반드시 증권사 계좌를 통해 해야 한다. 투상의 개인 은행계좌에 투자금액을 입금하는 것은 아주 위험한 일이다. 또 증권사 계좌의 도장과 증권카드 및 비밀번호는 절대로 투상에게 맡겨선 안된다. 대우증권 조모씨에게 피해를 본 정모씨는 5월 계좌에 들어있는 돈 1억원을 찾을 수 있는 출금전표에 도장을 찍어줬다고 한다. 조모씨에게 장외주식을 사달라고 하면서.

<홍찬선기자>hc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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