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강명헌/‘기업지배구조 개선안’ 알맹이 없다

  • 입력 2000년 11월 5일 19시 15분


정부가 최근 내놓은 ‘2단계 기업지배구조 개선안’은 재계의 주장이 거의 일방적으로 반영된 것으로 지배구조 개선의 취지를 무색하게 했다. 최근의 경제위기설 등 상황논리를 고려한다고 해도 유감이 아닐 수 없다. 핵심 사안인 집중투표제 의무화와 증권관련 집단소송제 도입에 대해 재계는 “기업지배구조 개선을 획일적으로 강요해서는 안되며 자율에 맡겨야 한다”며 반대하였다. 이번의 정부 개선안은 집중투표제의 의무화는 유보하고 증권관련 집단소송제는 도입시기도 정하지 않은 채 단계적으로 시행하기로 하였다.

무분별하게 돈을 빌려 외형적인 성장만 추구해온 재벌기업들은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 이후 구조조정과 경영의 투명성 제고 등을 권고받아왔다. 재벌의 정경유착, 총수의 경영전횡, 외부투자자의 재산권 침해 등 재벌의 대리인 문제 해결과 IMF 권고사항의 조속한 이행은 재벌기업에 대한 기업지배구조를 얼마나 효율적으로 개선 운용하느냐에 달려 있다.

따라서 재벌의 경우 어떤 형태로든 실질적인 기업경영을 감시할 수 있는 기업지배구조를 도입하는 것이 재벌개혁의 핵심이다. 그러나 이번 개선안을 보면 정부가 그동안 수차례에 걸쳐 공언한 연말까지의 기업구조조정 마무리 약속을 지킬 의지가 있는지 의심스럽다.

현재 우리의 상황을 보면 기업지배구조 개선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금융위기를 비롯한 총체적 경제위기를 벗어나기 위한 고육책이라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현재의 재벌기업 소유구조를 변화시키지 않고도 총수에 의한 일방적인 기업지배를 어느 정도 방지할 수 있는 집중투표제 도입을 의무화해야 한다. 현재 집중투표제는 1998년 말 개정된 상법에 도입됐으나 단서조항 때문에 상장기업의 22%만 시행하고 있다. 이 제도가 도입되면 소액주주를 대표하는 이사들이 선임될 수 있기 때문에 대리인 비용을 줄이며 총수의 권한은 그만큼 견제받게 되고 따라서 총수의 경영전횡도 줄어들 것이다. 그리고 집중투표제를 채택해도 다수파가 실효성을 상실시키는 것을 막기 위해 시차제에 의한 이사의 선출을 금지하는 것이 필요하다.

또한 1명이나 수명의 소액주주가 같은 입장에 있는 여타 소액주주들을 대신해 직접 손해배상을 청구하고 소송비용과 배상을 배분함으로써 소액주주들의 무임승차문제를 극복할 수 있는 집단소송제를 유예기간 없이 즉시 도입해야 한다. 최근 주주들의 대표소송요건은 대폭 완화됐으나 소액주주들의 무임승차 동기로 인해 대표소송을 제기할 인센티브가 그리 크지 않은 것도 이 제도의 도입을 서두르는 이유다.

집단소송제는 분식회계나 부실감사, 허위공시 등 각종 불법행위로 피해를 보는 대다수 투자자들의 권리 구제를 용이하게 함으로써 기업의 경쟁력을 강화하고 경영투명성을 제고할 수 있다. 그리고 집단소송의 대상을 기업의 임원뿐만 아니라 회계감사인도 할 수 있어 부실감사를 방지하고 회계의 투명성을 높이는 데도 기여할 것이다.

강명헌(단국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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