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껍데기 행사’는 이제 그만

  • 입력 2000년 11월 2일 19시 27분


한때 한국을 대표했던 기업들이 죽느냐 사느냐 하는 마당에 한쪽에선 축제가 끊이지 않고 있다. 각 지방자치단체가 10월 문화의 달을 전후해 경쟁적으로 전시성 행사를 열고 있는 것이다. 시민의 날 축제, 무슨무슨 문화행사 등 이름은 그럴 듯하지만 사실은 대부분 먹고 놀자판이다. 일부 행사는 엄청난 예산을 들였으나 내용이 없어 ‘껍데기 행사’라는 비판까지 나오고 있다.

서울시의 경우 국제 미디어 종합 축제라며 9월2일부터 두달간 일정으로 서울시립미술관 등에서 ‘미디어 시티 서울 2000’ 행사를 열었으나 시민들의 호응은커녕 반감만 샀다. 이미 한물간 장비를 첨단 미디어 장비라고 소개한데다 작품준비도 미흡했기 때문이다. 입장료도 턱없이 비쌌다. 서울시는 보름간 행사를 연장했으나 50억원 이상의 적자가 불가피한 상황이다.

서울시는 또 지난주 수억원의 예산을 들여 주말에는 길까지 막고 서울시민주간 행사를 열었으나 돈은 돈대로 쓰고 시민들에게 불편만 주었다는 지적을 받았다.

다른 지자체도 마찬가지다. 부산시의 경우 거의 1년 내내 각종 축제가 이어진다. 지난달 부산영화제와 자갈치축제에 이어 지금은 ‘내 사랑 부산축제 한마당’이 펼쳐지고 있고 9일부터는 ‘아시안 위크 2000’ 행사가 열린다. 인천시의 세계 춤 축제, 경남도의 창원 국제자동차경기대회도 적자투성이였다.

물론 축제는 필요하다. 그 지역의 전통문화를 잇는 것은 물론 주민들의 공감대 형성과 문화욕구 충족이란 점에서 수익성만 따지기는 힘든 측면도 있다.

그러나 문제는 95년 민선자치제 실시 이후 각 지역의 축제가 고유의 색깔을 잃고 있다는 점이다. 다음 선거를 의식한 단체장들이 관광상품 육성 등을 내세워 비슷비슷한 축제를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전국적으로 ‘○○아가씨 선발대회’가 80개가 넘을 정도다. 전남 함평 나비축제의 경우처럼 성공적인 기획도 없지 않았으나 대부분의 지방축제는 예산낭비 그 자체다.

그러잖아도 재정자립도가 형편없는 지자체들이 이벤트성 축제를 쏟아내고 있으니 주민들의 불신과 불만이 커질 수밖에 없다. 정부가 자치단체장 주민소환제 도입 등을 검토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이제 주민들이 자치단체의 예산낭비를 철저히 감시하고 이를 토대로 단체장을 심판해야 한다. 시민의 힘은 러브호텔 반대운동에서 이미 확인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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