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정현준 펀드'는 로비창구?

  • 입력 2000년 10월 26일 18시 58분


동방상호신용금고 불법대출사건은 권력형 비리라는 의혹이 증폭되고 있다. 벤처기업과 정 관계(政官界)의 구조적 부패고리가 주가폭락과 함께 대형 금융사고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이같은 의혹을 뒷받침할 만한 정황은 이미 여러 군데서 드러났다.

우선 금융감독원의 축소 은폐 기도다. 아직 단정하기는 이르지만 금감원이 무언가 숨기려 한다는 의혹이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금감원은 동방금고에 대한 특별검사에서 일찌감치 불법대출 사실을 확인하고도 유조웅 사장에 대한 출국금지조치를 의뢰하지 않아 사실상 그의 해외도피를 방조했다.

금감원은 또 뇌물수수 사실이 드러난 국장급 간부에 대해서도 고발조치를 취하기는커녕 이를 감추는 데 급급해 사건을 은폐할 시간을 주려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을 받고 있다. 지난해 12월에는 역시 이번에 문제가 된 대신금고의 불법대출을 적발하고도 솜방망이 징계에 그쳤다.

더욱 놀라운 것은 금감원이 검찰에 제출한 자료에도 ‘알맹이’는 빠져 있다는 것이다. 이는 결국 금감원이 조직적으로 사건을 은폐하려는 기도로 볼 수밖에 없다. 금감원의 이같은 행태는 금감원이 이미 금감원 고위간부를 비롯한 정 관계 인사들의 연루 사실을 확인했기 때문이 아니냐는 의심을 사기에 충분하다.

이 사건의 핵심 당사자인 한국디지탈라인 정현준 사장이 이경자 동방금고 부회장의 정관계 로비사실을 주장하면서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던 것도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이 사건에 연루된 정관계 인사들을 부각시켜 오히려 사건을 무마하려 한 것이 아니냐는 분석도 가능하다. 물론 경찰은 부인하고 있지만 내사결과 대형 권력형 비리인 것으로 드러나자 경찰이 서둘러 덮어버린 것이 아닌가 하는 의혹이 생길 수도 있다.

이 사건의 핵심은 불법대출금의 행방이다. 동방금고 등에서 나간 637억원 가운데 아직 사용처가 드러나지 않은 143억원이 정관계 인사들에게도 일부 흘러 들어가지 않았겠느냐 하는 것이다.

정사장과 이부회장이 수십억원 규모의 사설펀드를 조성한 것으로 드러났고 여기에 로비목적으로 정관계 실력자들을 끌어들였을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불법대출금의 행방은 사설펀드와 밀접한 관련이 있을 수밖에 없다. 사설펀드에 가입한 정관계 인사들은 나중에 손실을 보전받은 금감원 간부처럼 '안전’을 보장받고 평소 정사장 등의 뒤를 봐주었을 수 있다.

이제 검찰은 사설펀드에 가입한 '정현준 리스트’부터 확인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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