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주5일근무' 그렇게 급한가

  • 입력 2000년 10월 23일 19시 12분


노사정위원회가 23일 주40시간 근무체제에 합의함으로써 내년부터 일부업종에서 주5일근무가 공식적으로 실시될 전망이다. 그동안 반대해왔던 경영계의 태도변화가 얼마나 자발적이었으며 또 협상과정에서 그들의 주장이 얼마만큼 수용됐는지는 명확하지 않지만 어쨌든 이제는 국회심의절차만 남긴 상태다.

물론 노동계 주장대로 주5일근무가 세계적 추세임에는 틀림없다. 대만 정도만 빼면 우리와 경제수준이 비슷한 나라들이 대부분 선택했고 우리를 제외한 전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이 모두 실시하고 있으며 심지어 국민소득이 한참 떨어지는 중국도 오래 전에 이 제도를 도입했다.

이 제도를 실시하고 있는 국가와 기업들의 창의성이 그전보다 향상됐다는 학술적 보고도 없는 것은 아니고 노동자들의 생명연장과 건강증진에도 효과가 있다는 조사결과도 부인할 수는 없다. 우리가 경제발전으로 추구하는 궁극적인 목표가 삶의 질을 향상하는 데 있다는 점을 고려하더라도 주5일근무제의 도입을 근본적으로 반대할 사람은 없다.

그런데 과연 이 제도의 도입시기가 바로 내년 초이어야 하느냐 하는 데는 많은 의문이 생긴다. 왜 지금처럼 경제가 불안정하고 어느 때보다 경제주체들의 뼈를 깎는 노력이 요구되고 있는 시점에서 이 문제가 결정되어야 하는지도 의문이다. 기업과 금융기관의 구조조정으로 아마도 내년 초까지는 수십만명의 근로자가 일자리를 잃어야 하는데 바로 그 시점에서 이 제도가 실시된다면 노동계층간 극명하게 대조될 사회적 명암은 어떻게 처리해야 하나.

주5일근무로 여가시간이 증대되면 소비가 늘게 마련이고 그 결과는 당연히 저축의 감소와 시중자금사정의 악화로 이어진다. 특히 이틀 휴일 동안의 소비를 위해 더 많은 수입을 요구하다 보면 기업의 인건비 부담이 높아질텐데 업계가 이를 얼마나 감당할 수 있을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특히 기업의 주5일근무가 교육 등 사회 여타부문에 미칠 영향과 그 균형적 대책에 대한 연구는 충분히 되었는지도 궁금하다.

꼭 해야 한다면 일본 같은 나라가 11년에 걸쳐 점진적으로 도입해야 했던 이유를 충분히 고려하고 경제전반에 미칠 충격을 최소화하는 방향에서 실시되어야 한다. 한번 선택하면 돌이키기가 불가능한 중대 국가정책이 인기주의식 선택의 대상이 된다면 이는 대단히 유감스러운 일이다. 관련법률 개정을 위한 국회심의 등 앞으로의 일정에서 신중하고 면밀한 검토가 이뤄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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