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맞교환' 방식은 안된다

  • 입력 2000년 10월 20일 19시 05분


김대중 대통령과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이 내년까지 외규장각 도서반환 문제를 매듭짓기로 합의함으로써 7년여를 지루하게 끌어온 외규장각 도서반환 협상이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그동안 지지부진한 채 표류해온 이 협상이 돌파구를 마련한 것은 7월 서울에서 열린 제3차 회담에서다. 우리측은 프랑스 국립도서관이 소장 중인 외규장각 도서를 영구임대 형식으로 돌려받는 대신 그에 맞먹는 우리 문화재를 프랑스측에 빌려주기로 합의한 것이다. 이른바 ‘맞교환’ 방식이다.

당시 협상 대표들 사이에 구두로 합의됐던 이 내용은 최근 프랑스가 최종적인 수용의사를 밝혀옴으로써 협상이 급류를 타게 됐다. 한국과 프랑스 두 정상이 엊그제 만나 이 문제를 언급하면서 ‘내년 반환’이라고 구체적인 시점까지 명시한 것은 여기에 근거한다.

우리는 협상 진전을 환영하면서도 구체적인 합의 내용에 대해서는 문제를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외규장각 도서는 1866년 병인양요 때 프랑스함대가 강화도를 침입해 빼앗아 간 ‘약탈 문화재’임이 분명하다. 따라서 반환 협상을 통해 우리는 당연히 돌려받을 것을 돌려받는 것일 뿐이다. 그러나 영구임대를 통한 맞교환 방식을 채택하게 되면 외규장각 도서를 국내로 들여오는 성과는 있을지 모르지만 당시의 약탈행위는 정당화되는 셈이다.

우선 우리 정부가 외규장각 도서의 소유권이 프랑스측에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고 아울러 프랑스가 외규장각 도서를 입수하게 된 경위에 대해서도 별도로 문제삼지 않겠다는 것과 다름없기 때문이다.

외규장각 도서가 국내로 돌아오는 만큼 그와 비슷한 가치의 우리 문화재가 또다시 해외로 유출되는 것도 이번 합의가 지닌 모순이다. 약탈 문화재의 ‘반환’이 아닌 ‘문화 교류’ 수준에 불과한 이번과 같은 해결 방식은 앞으로 있을지도 모를 외국과의 유사한 문화재 반환 협상에서도 나쁜 선례로 남을 수 있다.

맞교환 방식은 프랑스측이 그동안 도서 반환에 대해 줄기차게 반대 입장을 고수했기 때문에 우리 정부로선 타협점을 찾는 과정에서 나온 고육책으로 이해한다. 하지만 외규장각 도서반환과 같은 문화재 협상이야말로 무엇보다 ‘명분’을 살리는 것이 중요하다. 11월6일 파리에서 제4차 협상이 열리도록 되어 있다. 우리측 대표는 보완 협상을 통해 납득할 만한 결과를 국민 앞에 내놓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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