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박명석/국제협상력 갖춘 인재 키우자

  • 입력 2000년 10월 9일 19시 45분


대우자동차에 이어 한보철강의 해외매각이 실패하자 정부 및 경제계 관계자들의 국제협상력 결여와 그 책임론이 도마에 올랐다.

대우자동차나 한보철강 매각 협상에서 채권단이 저지른 최대 실수는 본계약 체결시 계약파기 위약금 등의 구체적 제재조항을 두지 않아 상대방이 계약종료 단계에서 일방적으로 계약을 파기해도 손해배상 청구를 불가능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대우차 매각이 실패한 중요한 원인 중 하나로 채권단이 포드에만 매달린 미숙한 협상기술을 꼽는 시각도 많다. 채권단이 GM과 현대-다임러 크라이슬러 컨소시엄을 2, 3순위 협상 대상자로 정했다면 포드가 쉽사리 포기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는 얘기다.

포드의 제안 가격이 공개되도록 한 것도 국제거래의 기본을 모르는 무지의 극치였다. 여기에 2차 협상을 앞두고 정부 부처와 채권단이 선인수 후정산이나 1개월 내 조기매각 등의 확정되지도 않은 방침을 경쟁이나 하듯 멋대로 발설함으로써 협상력을 떨어뜨리는 데 일조했다.

수십억 달러에 이르는 한국의 간판급 기업들을 국제입찰에 내놓으면서 보증금 한 푼 못 받고 모든 정보만 송두리째 넘겨 준 우리의 협상력이 새삼 참담하게 느껴진다.

미국이나 북유럽 등 인간적인 관계에 얽매이지 않고 철저하게 결과 지향적인 거래에 초점을 맞추는 문화권에 속하는 사람들은 협상을 할 때 추후에 일어날지도 모르는 오해나 문제점들을 사전에 불식하기 위해 문서로 된 합의문에 도달할 때까지 항목 하나하나에 온갖 심혈을 기울인다.

특히 미국인들은 어떤 협상에서 의견대립이나 논쟁이 일어날 때 인간적인 관계에 얽매이지 않고 오로지 계약서에 입각한 법률적 대응으로 일관한다. 따라서 미국 회사들은 협상테이블에 나갈 때 전문변호사를 대동해 계약서 합의문을 하나 하나 일일이 검토하며 문제점을 발견할 때마다 전문가로부터 자문을 받는다.

이에 반해 화합이나 일치를 중시해 인간적 관계에 초점을 맞추는 한국과 같은 문화권에서는 이런 태도가 상대방을 못미더워하는 행위로 간주되기 쉽다. 따라서 계약조항을 꼼꼼히 챙기기보다는 상대방에 대한 인간관계나 유대에 치중한 나머지 파티나 술자리에 더 신경을 쓴다.

그래서 한국사람들은 협상테이블에서 전문가를 충분히 활용하지 못하고 협상 배후에서 적당히 자문을 받거나 계약합의서가 이뤄진 후 뒤늦게 잘못된 점을 발견하고 야단법석을 떠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지금까지 추진해온 대우차와 한보철강의 해외매각은 이제 물 건너간 것으로 보인다. 협상 미숙에 따른 책임론을 아무리 따져봤자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꼴이다.

우리는 너 나 할 것 없이 항상 큰 일을 당한 뒤 뒷북만 쳐왔다. 더 이상 한국이 세계시장에서 조롱거리로 전락하기 전에 언어 문화적으로 다변화된 유능한 국제협상 능력을 갖춘 인재를 많이 양성하는 것만이 우리의 협상능력 부족을 해소하는 길일 것이다.

박명석(단국대 교수·문화간 커뮤니케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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