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이재호/역사를 새로 쓴다는 각오로

  • 입력 2000년 10월 8일 18시 36분


김대중(金大中)대통령과 이회창(李會昌)한나라당총재의 9일 영수회담을 앞두고 이번 회담이 남북문제에 대한 두 사람의 공감대를 넓혀주는 자리가 되기를 기대해본다.

이유는 자명하다. 남북관계의 급변에 따른 심각한 인식의 혼란 때문이다. 한쪽에선 노동당 창건기념일을 맞아 사회단체 대표들이 북한에 갈 예정이고, 다른 한쪽에선 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의 서울 방문을 반대하는 국민궐기대회가 준비되고 있으니 실로 혼란스럽다. 기존의 사고로는 변화를 쫓아가기도, 이해하기도 힘들 정도다.

이럴 때일수록 중요한 것은 국민적 컨센서스다. 두 사람이 대북정책의 방향과 원칙에 대해 속마음을 털어놓고 공감대를 넓힌다면 6월 남북 정상회담 이후 지적되어온 국민적 합의의 결여나 인식의 혼란은 상당부분 해소될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김대통령이 먼저 이총재의 생각을 겸허한 마음으로 들어야 한다.

의도했건 안했건간에 김대통령의 대북 드라이브는 이총재를 남북관계 개선에 소극적인 수구적 지도자로 만들어버린 감이 있다. 그러나 이총재인들 대북 화해협력정책의 역사적 당위성을 모를까. 김대통령의 대북정책을 보면서 가끔 ‘사명감의 독점’ 같은 것을 느끼는 데 거기에는 아직도 자아성취형 운동가로서의 집념과 아집이 묻어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총재도 협력할 것은 협력해야 한다. 적어도 대북 화해협력이 이 시대의 바른 정책적 선택이라고 믿는다면 지지하고 도와야 한다.

따지고 보면 남북관계는 김대통령이나 이총재에게 결코 제로섬게임이 아니다. 내가 이기면 너는 지는 게임이 아니라 오히려 난 제로섬게임(Non Zero―Sum Game)에 가깝다. 이른바 ‘죄수의 딜레마 게임’처럼 경쟁하지 않고 협조하면 이익이 극대화되는 그런 게임이다.

쉽게 생각해보자. 김대통령은 이총재의 입장을 이해하고 배려함으로써 대북정책에 대한 국민적 합의를 확보할 수 있다. 반면 이총재는 김대통령에게 협조함으로써 이미 돌이킬 수 없는 대세가 돼버린 남북관계의 흐름에 자연스럽게 ‘동승’할 수 있다. ‘동승’은 김대통령의 임기만료가 가까워오면서 ‘주도’로 바뀔 수도 있다.

남북관계의 변화는 그 자체로 끝나지 않는다. 굳이 연계이론을 빌리지 않더라도 동북아 전체에 영향을 미친다. 국내정치와 국제정치와의 구별은 이미 무의미한 것이어서 한 나라의 대외정책은 그 지역 전체의 질서와 모습을 바꾼다.

7일 나온 북한의 ‘테러 반대’ 성명과 뒤이어 예상되는 북한의 테러지원국 지정 해제와 북―미 수교는 극명한 예다. 북―미 수교 움직임은 또한 북―일 수교를 앞당기게 할 것이다. 4강에 의한 남북 교차승인이 눈앞의 현실로 다가온 셈인데 아마 2∼3년 후의 동북아는 지금과 전혀 다른 세력균형의 양태를 띨 것이다.

한반도와 주변 4강은 이같은 변화의 급류 속에서 용트림하고 있다. 그리고 그 변화의 끈을 김대통령과 이총재가 함께 쥐고 있다. 남북문제가 정쟁(政爭)의 대상이 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두 사람은 동아시아의 역사를 새로 쓴다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결코 과장이 아니다.

<이재호 정치부장>leejaeho@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