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김충식/이 한 장의 사진

  • 입력 2000년 10월 3일 19시 05분


소년 라미의 일그러진 얼굴이 지워지지 않는다.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의 총성 울리는 거리, 담벼락에 웅크린 채 공포에 질린 아이. 옆에 있던 아빠의 살려달라는 절규도 빗발 같은 총성이 삼켜버린다. 라미는 고개를 떨구었다. 복부 관통 사망. 12세 소년은 무엇을 생각하며 죽음을 맞았을까. ‘전쟁과 증오’가 무엇인지를 묻는 장면이다. 프랑스 TV카메라에 잡혀 보도된 이 몇초의 상황이 아랍인들을 분노로 들끓게 하고 있다.

▷보도사진은 순간과의 대결이다. 시대의 표정이 담긴 찰나의 포착, 그 가슴 울리는 리얼한 한 장면을 위해 사진기자는 목숨을 건다. 그리고 기막힌 ‘포착’은 거대한 역사를 움직인다. 68년 베트남 경찰청장 로안의 베트콩 즉결처형 사진이 그랬다. 로안이 대로에서 잡혀온 베트콩의 관자놀이에 권총을 들이댄다. 베트콩은 두려움에 눈을 찡그리고, 방아쇠를 당기자 피를 쏟으며 쓰러진다. 이듬해 퓰리처상을 탄 이 사진은 미국의 여론을 반전(反戰)으로 몰아간 실마리였다.

▷73년 퓰리처상을 받은 ‘네이팜탄(彈) 소녀’사진도 역사의 물줄기를 바꾸었다. 베트남 마을에 미군의 네이팜탄이 떨어지자 아홉살 소녀가 전신에 화상을 입고 알몸으로 울부짖으며 내달린다. 그 처절한 질주는 미국안팎의 반전 여론을 더욱 부추겼다. 94년 퓰리처상을 받은 ‘수단의 굶주린 아이’도 아프리카의 기아 참상을 세계에 부각시켰다. 커다란 독수리가 뼈만 남아 비칠거리는 서너살배기 소녀의 죽음을 기다리는 장면. 그러나 사진을 찍은 캐빈 카터는 셔터를 누르기 전에 소녀부터 보살펴야 했다는 비판을 받았고 끝내 자살했다.

▷사진은 빛으로 물들이는 시대의 사생(寫生)이다. 그리고 반향은 인간에 대한 물음의 메시지가 강할수록 커진다. 삶 죽음 전쟁 미움 갈등 같은 근원적인 문제들을 두드릴수록 더욱 공명(共鳴)을 얻는다. 라미의 죽음을 TV로 지켜본 아랍권은 ‘이스라엘 타도’를 외치고 있다. 이 핏빛 전운을 지켜보는 세계인의 심정은 두렵고 착잡하다. 또 얼마나 많은 라미 또래가 공포에 떨며 눈감아야 할 것인지.

<김충식논설위원>seeschem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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