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가 흐르는 한자]疑心(의심)

  • 입력 2000년 9월 26일 18시 28분


疑―의심할 의 狐―여우 호 狡―교활할 교 寵―사랑할 총 聰―귀밝을 총 鞏―굳을 공

지난번 ‘不信’에 이어 이번에는 ‘疑心’에 대해 알아본다. 각 동물이 상징하는 바는 민족마다 다르다. 우리는 여우를 간사함의 상징으로 여기지만 중국사람들은 疑心의 상징으로 여긴다. 그들에 따르면 여우란 놈은 하도 疑心이 많아서 얼어붙은 강을 건널 때도 좀처럼 발을 떼지 못한다. 그래서 ‘狐疑(호의)’라고 하면 ‘여우처럼 의심한다’는 뜻이다. 대신 그들이 간사한 동물로 꼽는 것은 토끼다. ‘狡兎三穴(교토삼혈)’이라는 말은 여기에서 나왔다.

중국 春秋時代 鄭나라의 武公은 인접국 胡나라를 호시탐탐 노리다 먼저 자신의 딸을 胡王에게 시집보냈다. 과연 胡는 鄭나라를 전혀 의심하지 않았다. 武公은 신하들에게 물었다.

“군대를 동원하고 싶은데 어느 나라를 칠까?”

大夫 關其思(관기사)가 胡를 치라고 하자 武公은 胡 대신 그의 목을 쳤다. 胡王은 크게 기뻐한 나머지 鄭나라에 대한 방비는 더 이상 하지 않았다. 결국 武公은 胡나라를 멸망시켰다. 이 사건으로 諸侯間에 疑心이 極에 달했다.

秦始皇이 天下를 통일하면서 諸侯間의 싸움은 사라졌다. 그러나 그 天下는 어떻게 손에 넣을 수 있었던가? 피를 흘린 戰爭이 아니었던가? 어렵게 天下를 손에 넣은 만큼 천년 만년 지키고 싶은 게 人之常情이다. 그러자면 믿는 구석이 있어야겠는데 그게 어디 쉬운 일인가? 자식도 믿지 못하는 세상에. 그러니 疑心부터 할 수밖에.

한편 臣下는 臣下대로 疑心이 많았다. 天子의 寵愛(총애)를 다투다 보니 자연히 상대방을 헐뜯거나 아첨을 해야 했다. 天子의 聰明이 빛을 낼 때는 이런 현상이 심하지 않았다. 그러나 중국 역사에서 그런 天子는 많지 않았다. 신하들의 弄奸(농간)에 놀아났거나 심한 경우 일부러 부추겨서 자기 지위를 鞏固(공고)하게 했던 천자들이 더 많았다. 그러니 서로 믿을 수 없고 疑心만 잔뜩 하게 된 것이다.

역시 春秋時代 이야기다. 宋나라의 한 부잣집 담장이 장마에 무너지고 말았다. 그러자 아들과 옆집 영감이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빨리 담을 쌓지 않으면 도둑이 들 것입니다.”

과연 그날 밤 도둑이 들자 부자에게는 자신의 아들은 聰明하다고 칭찬한 반면 옆집 노인은 도둑으로 疑心했다. 韓非子에 나오는 이야기다. 이래저래 疑心이 많았다.

鄭錫元(한양대 안산캠퍼스 교수·중국문화)

478sw@mail.hany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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