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시중에는 ‘박세리와 박찬호를 보는 재미로 산다’는 인사도 통했다. 정부가 훈장을 준 일도 과하게 느껴지지 않을 정도였다. 스포츠 스타들이 IMF를 극복하자는 사회적 일체감 조성에 도움이 된 때였다. 그러나 지금은 IMF 공식 졸업을 눈앞에 둔 시점이다. 말하자면 스포츠 스타의 승패가 사회적으로 크게 영향을 미칠 때는 아니다. 그럼에도 어제 박찬호의 메이저리그 17번째 승리와 ‘슈퍼 땅콩’ 김미현의 여자골프 시즌 첫 승은 크게 느껴진다.
▷물론 박찬호와 김미현의 승리는 일상적인 것은 아니다. 박찬호의 17승은 아시아 출신 메이저리그 투수로는 초유의 기록이다. 96년 일본의 노모가 세운 16승 기록을 갈아치운 것이다. 김미현의 우승은 미국골프무대에서 처음으로 이뤄진 한국선수끼리의 승자결정전에서 얻은 승리라 특이하다. 특히 김미현은 최종라운드에서 더블보기와 트리플보기를 하고서도 승리했다. 두 선수 모두 이제는 관록이 붙은 상황이긴 하지만 최선을 다한 결과였다.
▷그렇지만 ‘그들 승자의 환희’가 크고 반갑게 여겨지는 이유는 아무래도 우리의 삶과 관련이 있을 듯 싶다. 지금 우리의 주변은 시원하지 못한 일이 널려 있는 게 분명하지 않은가. 태풍의 피해, 의약분업 혼란, 고유가, 주식시장의 끝없는 추락, 한빛은행부정대출사건 등등 짜증나는 일이 한둘이 아니다. 박찬호와 김미현이 보내준 시원한 소식으로 잠시나마 짜증을 씻어낸 사람들이 많았을 것이다. 올림픽 한국선수단도 남은 경기에서 좋은 성적을 거뒀으면 좋겠다.
<윤득헌논설위원>dhy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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