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그게 이렇지요]한빛銀사건 계기로 본 '정보戰'

  • 입력 2000년 9월 24일 19시 00분


정치권에서 ‘정보’는 힘의 발원이자 권력 그 자체다. 군사독재정권 시절의 권력은 ‘총구’에서 나왔지만 지금은 정보에서 나온다는 말이 실감날 정도다.

▽정보전의 파괴력〓97년 대선에서 김대중(金大中)후보와 이회창(李會昌)후보의 승부도 정보전에서 판가름났다는 얘기가 많다. 김후보가 제기한 이후보 아들의 병역비리 의혹이 승부의 분수령이 됐다는 것. 당시 이후보도 대선이 임박한 상황에서 ‘DJ 비자금 의혹’이라는 승부수를 던졌지만 검찰의 수사 불발로 무위에 그쳤다.

98년 정권교체 이후 터진 ‘국회 529호 사건’ ‘언론문건 사건’ ‘총풍(銃風) 사건’ ‘옷로비 사건’ 등도 정보전의 산물이었다.

박지원(朴智元)전문화관광부장관의 사퇴로 이어진 한빛은행 사건도 전형적인 정보전의 성격을 띠고 있다. 한나라당은 신용보증기금 전 영동지점장 이운영(李運永)씨 주변에서 흘러나오는 정보들을 이용해 의혹을 증폭시키면서 여권을 몰아붙였고, 이에 여권은 이씨 주변인물들에 대한 정보를 근거로 ‘한나라당 배후 의혹’을 제기하면서 반격에 나섰다.

정보전의 엄청난 파괴력은 정치적 공방 과정에서 쏟아지는 정보들이란 게 당장은 사실 여부를 확인할 수 없는 것들이 대부분이어서 실체는 뭔지 모르는데 의혹만 눈덩이처럼 불어날 수밖에 없다는 데 기인하고 있다.

▽정보 수집〓정보는 아래에서 위로 흐르는 경향이 있다. 가공되지 않은 거친 정보들은 단계마다 조탁(彫琢)과정을 거치게 되고, 마지막에는 사용자에 따라 날카로운 ‘비수’로 벼려진다.

여권에는 주로 정보 수사기관의 광범위한 수집활동에 의해 정보가 쌓인다. ‘DJ 비자금 의혹’이나 ‘총풍 사건’은 검찰의 내사, 또는 수사자료를 종합한 것이다. 오랜 세월 야당만 하다 처음 여당이 된 민주당은 요즘 ‘여권 정보’의 위력을 톡톡히 실감하고 있다.

반면 한나라당은 제보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다. 주로 정보 수사기관 출신이나 관료 출신에 정보가 집중되는 경향이 있다. ‘구여권 프리미엄’인 셈. ‘언론문건 사건’을 터뜨린 정형근(鄭亨根)의원이나, 한빛은행사건 배후 의혹을 사고 있는 엄호성(嚴虎聲)의원이 이같은 경우에 해당된다. 한나라당은 주로 여권 실세들에 대한 개인비리와 권력형비리 정보 수집에 초점을 맞추고 있고, 이를 위한 자체 전담팀도 구성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정보 활용〓정제된 정보는 여야의 총수들에게 보고되고 공표 여부에 대한 재가를 받는다. 물론 극비다. ‘뒤탈’이 생길 경우 공표자 선에서 책임을 진다. 일명 ‘꼬리 자르기’다.

최종단계에서는 여야 어느 쪽이든 사용목적에 따라 정보에 대한 가감첨삭(加減添削)이 이뤄지는 경우도 있다. 파괴력과 신빙성을 높이기 위해서다.

여권은 주로 대선이나 총선 때 대야공세의 무기로 정보를 활용한다. 따라서 파괴력은 크지만 야당의 반격 위험성도 그만큼 크다. 특히 의도성이 드러날 경우 효력은 반감된다.

여권 관계자들은 “여권은 정보를 잘 쓰면 ‘약’이지만 못 쓰면 ‘독’이 된다”며 “정보의 활용은 타이밍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한다.

▽계속되고 있는 정보전〓박지원 전장관이 퇴임 기자회견에서 한나라당의 97년 대선자금과 관련된 녹음테이프의 존재 여부에 대해 “테이프인지는 모르나 그런 얘길 들은 적이 있다”고 여운을 남긴 것도 일종의 ‘신경전’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천용택(千容宅)전 국가정보원장은 “금시초문이다”는 반응을 보였고, 국정원 기조실장을 역임한 이강래(李康來)전 정무수석이나 박주선(朴柱宣)전 대통령법무비서관도 “들어본 적이 없다”고 부인했다. 박 전장관도 “경황 중에 한 얘기”라고 해명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권이 한나라당에 대한 모종의 ‘1급정보’를 보유하고 있을 것이라는 얘기가 무성하다. 구여권의 ‘북풍(北風)’ ‘세풍(稅風)’과 관련한 ‘비장의 카드’를 가지고 있다는 설도 나돈다. 한나라당 내에서도 “여권 핵심실세 모씨가 대출압력에 연관됐다더라”는 등의 얘기가 흘러나오고 있다.

<윤영찬기자>yyc11@donga.com

▼'겉도는 국회' 통계자료 공방▼

여야 간에 난데없이 계산기까지 동원한 ‘통계공방’이 한창이다. 국회 공전의 책임을 놓고 여야가 과거의 ‘네 탓’ 사례들을 집계한 숫자까지 들먹이며 서로를 비난하고 나선 것.

민주당 장전형(張全亨)부대변인은 24일 “정권교체 후 지금까지 국회가 25차례 소집됐으며 이 중 한나라당 의원들의 구속을 막기 위한 ‘방탄국회’는 11차례나 됐다”고 공격했다. 서상목(徐相穆) 전의원 보호를 위한 국회 소집이 5회, 이신행(李信行) 전의원 보호가 4회, 정형근(鄭亨根)의원과 강경식(姜慶植) 전 의원 보호가 각각 1회 열렸다는 것.

민주당은 또 한나라당이 98년 9월 이후 장외집회만 20차례 가졌으며 특히 최근의 부산집회 등은 막대한 동원비용이 들어간 ‘초호화판 집회’였다고 주장했다. 그 근거로 민주당은 1인당 식대와 교통비, 버스임대료 등을 최저가로 계산해도 부산집회에만 8억원 정도가 들었고 인천 서울집회까지 합하면 총 집회비용은 20여억원에 달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한나라당도 ‘민주당이 야당 때는 더 했다’며 즉각 반격했다.

한나라당은 먼저 97년 민주당의 전신인 국민회의가 금융개혁법안을 비롯한 일련의 법개정에 반대함으로써 국회를 파행으로 끌고가 결국 경제위기를 가중시켰다고 역공했다.

96년에도 15대총선이 끝나자마자 부정선거 운운하며 국회를 공전시키는 바람에 개원식이 법정 개원일이 한달여나 지난 7월4일에야 열렸고, 12월에도 안기부법 개정안 처리를 막는다며 국회의장단을 연금시켜 정기국회가 자동 폐회됐다고 지적했다.

이 밖에 95년에는 통합선거법(3월) 대구지하철사고(5월)와 관련해 임시국회를 각각 30일씩 유회시켰고, 94년에는 DJ 자택 정치사찰 및 상무대 정치자금 의혹 관련 국정조사와 12·12사건 주모자 기소 촉구 장외투쟁으로 국회를 장기 공전시켰다는 것이다.

<송인수·이철희기자>is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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