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시장을 살리자]공적자금 더 주어라

  • 입력 2000년 9월 22일 18시 34분


경제에 대내외적인 악재가 겹치면서 주식 채권 등 직접금융시장은 거의 마비상태에 빠졌다. 올 들어 8월까지 주식시장에서 기업이 조달한 자금규모는 작년 같은 기간에 비해 14%에 불과하다. 이 기간 중 회사채 발행도 대기업은 작년의 48%, 중소기업은 23% 규모에 불과했다.

이 엄청난 구멍을 메워줄 곳은 은행뿐이다.

그러나 은행의 역할도 여의치 않다. 금년 8월까지 은행예금이 62조원이나 증가했음에도 불구하고 기업대출의 증가규모는 그 절반에도 못 미치는 23조5000억원에 불과했다. 은행들은 풍부한 자금을 기업대출로 운용하기보다는 국채를 매입하거나 가계대출을 늘리는 데 열중하고 있다. 은행 입장에서는 2차 금융구조조정의 기준이 되는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 비율 하락을 막기 위해 대출축소가 불가피했을 것이다.

우량기업도 이 상태대로라면 불과 몇 개월을 버텨내기 어려울 상황이다. 사실 우리 경제가 거듭되는 악재에도 불구하고 그럭저럭 신뢰를 유지하고 있는 것은 기업과 실물경제가 어느 정도 받쳐주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멀쩡한 기업들이 자금난으로 흑자도산 등의 사태를 겪는다면 경제 전체가 또 한번 위기에 빠질 것이다.

이런 일만은 막아야 한다.

솔직히 말해 현 상황에서 주식이나 채권시장에 역할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등 돌린 투자자들이 시장에 되돌아오려면 어느 정도 시간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결국 해결사 노릇은 은행이 할 수밖에 없다. 은행의 역할이 워낙 중요하기 때문에 국민은 은행에 혈세(공적자금)를 쏟아붓는 것을 눈감아주는 것이다.

은행의 기능을 회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단기적으로는 은행의 불안감을 해소시켜줘야 한다. 이것은 시장을 설득할 만큼의 충분한 공적자금을 은행에 지원해야 한다는 뜻이다.

물론 이 과정에서 은행에 지원된 자금이 헛되이 새지 않고 우량기업이나 회생 가능한 기업에만 흘러들어갈 수 있도록 금융절차와 금융감독을 투명하게 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부실이 심하거나 회생이 불가능한 한계기업을 과감히 정리하는 등 기업구조조정이 차질 없이 병행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해야 할 일은 따로 있다. 중장기적으로 은행이 진짜 ‘장사꾼’이 되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그동안 장사꾼으로 일한 은행은 모두 우량은행이 되어 있고, 정부가 산하기관처럼 부리던 은행은 다 부실은행이 되어 있지 않은가?

부실기업을 퇴출시키고 실물경제의 건강성을 지키는 일은 바로 장사꾼 은행의 몫이다. 정부가 은행장 인사를 주물럭거리는 은행은 절대 이 일을 할 수 없다. 이를 위해서는 은행에 주인을 찾아줘야 한다. 금융개혁이란 바로 이것이다.( 정기영 삼성금융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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