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외교가]김일성대학 출신 외교관들

  • 입력 2000년 9월 21일 19시 10분


이들은 이 대학에서 유학생활을 하며 한솥밥을 먹은 인연으로 남다른 친분을 나누고 있다. 또 평양 주재 대사관의 공관원으로 다시 만나기도 한다. 외교관들의 모임이 있을 때면 이들은 곧잘 한국어를 ‘공용어’로 삼아 대화한다.

주한 대사관 가운데 이른바 ‘김대(金大)’동창들이 가장 많은 곳은 중국 대사관. 톈바오전(田寶珍) 왕빙신(王丙辛)공사를 비롯해 14명의 외교관이 이 대학 졸업생들. 이들은 북한―중국간의 교환 학생 자격 등으로 유학해 ‘김대’ 조선어문학부 등을 졸업했다. 이들 모두가 한국 사람으로 착각할 만큼 유창하게 한국어를 구사한다. 84∼86년 이 대학에 유학했던 안위샹(安玉祥)교육참사관은 “즐거운 마음으로 유학생활을 했다”며 “이 대학 유학생들이 과거에는 평양 말을 썼는데 서울에서 만나보니 자연스레 서울 억양이 배어 있더라”고 말했다.

중국 대사관 외에도 러시아 몽골 베트남 루마니아 불가리아 헝가리 시리아 예멘대사관 등에 ‘김대’ 동창들이 근무하고 있거나 임기를 마치고 돌아갔다.

이들이 회상하는 ‘김대’는 꽤 괜찮은 캠퍼스를 가지고 있다. 한때 북한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었던 23층 짜리 ‘2호 교사(校舍)’의 높은 층에서는 대동강이 한 눈에 내려다보인다. 현대식 빌딩과 서구식 석조 건물들이 숲과 함께 어우러져 캠퍼스의 풍광이 아름다운 데다 면학 분위기도 넘친다는 것.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을 지냈던 김두봉을 비롯해 허헌, 하앙천, 황장엽 등이 이 대학 총장을 지냈다. 이들이 교육받을 당시의 교수진은 대부분 도쿄제대나 경성제대 출신의 일제시대에 교육받은 최고 엘리트들.

러시아 대사관의 발레리 수히닌 공사도 68∼73년 이 대학 조선어문학부에서 유학했다. 그는 “현재 몽골 대사관에 와있는 롬보 잔치브도리 참사관, 라그바 바산자브 서기관과 같은 기숙사에서 유학생활을 했다”며 “‘김대’동창들과는 가끔 평양 주재 외교관으로서 만나기도 해 남다른 정을 나눈다”고 말했다.

이 같은 인연으로 ‘김대’동창 외교관들은 자녀들도 같은 학교에 다니기도 한다. 2대에 걸친 ‘겹동창 사이’로는 수히닌 공사와 잔치브도리 참사관의 딸 등을 꼽을 수 있다. 수히닌 공사는 “유학생들은 기숙사에서 3명이 묵는 방을 쓰며 3명 가운데는 북한인 ‘동숙생(同宿生)’이 끼어 있다”며 “유학생들은 이 학생으로부터 한민족 문화와 한국어 습득 등을 도움 받는다”고 말했다.

그는 “유학생들은 누군가 생일을 맞거나 기분 좋은 날이 있으면 대동강 외교단 회관이나 보통강호텔, 옥류관 등을 찾아가 즐겁게 어울리기도 했다”며 “유학시절 익힌 교양들이 서울에 와서도 큰 도움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전 현 사회주의권의 주한 외교관들이 유학한 북한 대학교로는 ‘김대’ 외에도 평양사범대, 평양외국어대, 평양건실대 등이 있다. 그러나 한국과 이들 국가와의 국교 수립으로 차츰 한국으로 유학 오는 사람도 많아지고 있다. 앞으로는 ‘김대’출신 외에도 서울대와 고려대 연세대 외국어대 등에서 공부한 전 현 사회주의권 국가의 외교관들도 늘어날 전망이다.

<권기태기자>kk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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