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가 흐르는 한자]鐵道(철도)

  • 입력 2000년 9월 17일 19시 01분


鐵 道(철도)

鐵―쇠 철 奪―빼앗을 탈 港―항구 항

逐―쫓을 축 縱―세로 종 貫―꿸 관

서구 열강의 植民地 侵奪史를 보면 재미있는 특징을 찾을 수 있다. 門戶開放, 즉 開港을 통해 일단 진출로를 확보하면 그 다음에는 어김없이 각종 利權을 챙겨간다. 삼림 벌채, 광산 채굴, 鐵道 부설 등이 그것이다.

우리도 예외가 아니었다. 우리나라의 鐵道는 19세기 후반 제국주의 角逐(각축)의 副産物(부산물)로 태어났다. 특히 일제의 한반도 收奪(수탈)과 대륙 진출 野慾(야욕)의 所産이었던 것이다. 우리 조정의 자주적인 철도 부설 노력도 치열했지만 재정의 缺乏(결핍)으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우리나라가 鐵道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것은 1876년 丙子修好條約(병자수호조약) 체결 이후다. 修信使(수신사)로 일본에 다녀온 金綺秀(김기수)나 주미공사 朴定陽(박정양), 주미대리공사 李夏榮(이하영) 등에 의해 鐵道에 대한 인식이 높아져 鐵道 부설 문제가 정식으로 논의되기 시작한다.

1894년 淸日戰爭을 승리로 이끈 일본은 군사상의 이유로 각종 鐵道 부설을 요구했으며 5년 뒤인 1899년 9월 18일 마침내 노량진에서 제물포를 잇는 경인선 32㎞를 개통시킨다. 이후 경부선 등 국내 鐵道 부설권을 독점해 1905년 경부선, 이듬해 경의선, 1914년 호남선과 경원선을 개통시켰다. 鐵道가 일본의 식민지 통치와 착취, 대륙침략의 수단으로 시작됐음을 알 수 있다.

역사적인 남북화해와 함께 경의선의 존재가 부각되고 있다. 서울을 기점으로 개성 사리원 평양 신안주를 거쳐 신의주에 이르는 총연장 499㎞, 관서지방을 관통하는 縱貫(종관)鐵道다. 이 鐵道가 주목받는 것은 분단 반세기 만에 남북을 잇는다는 의미뿐만 아니라 경의선이 지니고 있는 경제적인 가치 때문이다. 지금은 서울∼문산간 46㎞만 운행하고 있지만 연결만 되면 신의주에서 압록강 철교를 건너 滿洲까지 통할 수 있게 된다. 실제로 해방 전까지만 해도 서울과 滿洲 長春간에 주 3회 직통열차가 운행돼 유럽과 아시아를 연결하는 國際鐵道로서의 기능을 수행했던 것이다.

일제가 대륙침략을 목적으로 부설하였던 것이 이제는 21세기 ‘철의 실크로드’로서의 기능을 할 수 있게 될 것으로 기대된다. 현재 우리는 경인선이 개통된 (1899년) 9월 18일을 鐵道의 날로 정해 기리고 있다.

鄭 錫 元(한양대 안산캠퍼스 교수·중국문화)

478sw@mail.hany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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