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정훈의 책·사람·세상]출판인 알두스 마누티우스

  • 입력 2000년 9월 15일 18시 31분


매체가 메시지라는 말에서 볼 수 있듯이, 매체는 수단 이상의 중요성을 지닌다. 1990년대 중반 이후 디지털 매체의 급격한 대두와 함께 디지털 혁명이라는 말이 자주 회자된다. 이 말은 구텐베르크 혁명, 그러니까 인쇄술이 서구 지성사에 미쳤던 혁명적인 파급 효과와 맥락을 공유한다.

◇16세기 유럽서 '良書' 보증수표◇

그러한 혁명의 중심에, 이탈리아 베네치아에서 활동한 알두스 P. 마누티우스(Aldus Pius Manutius·1452∼1515)가 있었다. 16세기 유럽에서 In aedibus Aldi(Aldus & Co.)라는 표시는 좋은 책임을 보증하는 마크 그 자체였다. 알두스 마누티우스는 자기 시대의 관심을 반영하는 무척 다양한 분야의 책을 출간했다. 희랍과 라틴 고전, 문법서, 종교 도서, 당대의 세속 저작물, 정치, 과학, 역사, 지리 등의 분야를 포괄한다. 그리고 치체로, 루크레티우스, 호라티우스, 플루타르코스, 투키디데스, 소포클레스, 아리스토파네스, 이솝, 오비디우스, 케사르, 플라톤, 이런 이름들을 그의 출판물 목록에서 볼 수 있다.

그가 이끈 알디네 출판소가 내놓은 책은, 매력적인 활자체, 미려한 디자인, 이용의 편리성 등으로도 이름이 높지만, 역시 그 최대의 중요성은 유럽 지성계에 미친 영향이다. 당시까지 전해 내려오는 고전 텍스트의 출판을 통해,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인문정신이 전 유럽으로 확산되는데 중요한 기여를 했던 것이다. 전통 동아시아의 지식인들을 문인―관료 또는 학자―관료라고도 일컫는데, 알두스 마누티우스는 실로 출판인―학자였다. 그는 1467년부터 1473년까지 로마 대학에서 고전학을 공부했고 1470년대 후반에는 페르라라 대학에서 희랍 고전을 연구했다.

그는 라틴어 문법개론서(Institutiones grammaticae)를 직접 집필하기도 했으며, 그의 대를 이은 마누티우스 가문의 후계자들도 출판인―학자의 전통을 이었다. 아들 파울루스 마누티우스는 치체로와 고대 로마 문화에 관한 정상급의 학식을 보유하고 있었고, 할아버지의 이름을 따른 손자 알두스 마누티우스도 북부 이탈리아 도시의 역사를 강의하고 몇몇 학문적 저작을 남겼다. 이탤릭체라 불리는 서체도 바로 알디네 출판소에서 1500∼1501년경에 처음 개발되었다. 실제의 출판 활동에 학자들을 대거 참여시킨 것도 알디네 출판소가 사실상 최초였다.

◇출판 환경이 아무리 변해도…◇

새로운 매체 환경의 대두와 함께 출판 분야 역시 그에 따른 대응으로 분주하다. 심지어 전자책이 일반화되면 기존의 출판 편집, 제작 인력들이 불필요할지도 모른다는 성급한 예측도 나온다. 그러나 매체 환경이 아무리 혁명적으로 바뀐다해도, 새로운 시대의 새로운 알두스 마누티우스는 언제나 필요하다. 디지털 매체가 아무리 위력을 발휘한다고 해도, 출판인―학자의 전통을 대체할 수는 없다. 그런 전통이 우리에게 아직까지 없다면, 이제부터라도 전통을 만들어 나갈 일이다. (출판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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