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드니올림픽]'천막대사관' 애보리진의 외침

  • 입력 2000년 9월 14일 18시 49분


호주 원주민인 보니 브릭스(23)는 ‘아보리진 천막 대사관’(텐트 앰버시)을 두 달간 지키고 있다.

그녀는 호주 전역에서 모인 150여명의 애보리진 운동가 중에서 유일하게 대학을 다닌 인텔리다.

“5000년간 이곳을 지켜온 애보리진은 200여년전 이곳을 침략한 백인들에게 모든 것을 빼앗겼다. 28년된 ‘천막 대사관’은 이 땅에 대한 권리를 회복하길 원하는 우리의 염원을 대표하는 곳이다.”

100개가 넘는 애보리지안 종족중 ‘카미라로이’족 출신인 그녀 가족은 ‘빼앗긴 세대’(Stolen Generation)는 아니다.

1970년대까지 호주 정부가 애보리진 개화를 위해 강제로 원주민 아이들을 부모로부터 격리시킨 비인간적인 처사를 피한 것은 행운이었다. 부모의 도움으로 15세때 시드니에서 고등교육을 받을 수 있었던 것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나처럼 교육 받은 애보리진은 많지 않다. 문맹인 부모들이 자녀 교육에 거의 무관심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학교에서 백인 문화만을 가르치고 사소한 문제로 아이들을 퇴학시키키는 부당한 대우가 큰 문제다.”

많은 애보리진들은 법적 평등에 가려진 실제적 차별이 존재함을 이야기한다. 호주 평균보다 애보리진의 평균 수명이 18년이나 짧고, 평균 수입이 3분의 1밖에 안되며, 실업률이 5배(34%)가 넘는 통계가 이를 말해준다.

브릭스도 ‘백인의 법’이 가진 편견에 대해 목소리를 높였다. “헬멧을 안쓰고 자전거를 탔다고 아이들을 감옥에 집어넣는다. 술집에서는 셔츠를 입지 않았다, 신발이 낡았다 등등 갖은 핑계를 대고 들여보내지 않는다’고 분개했다.”

애보리진 인권 차별은 올림픽을 맞아 더 늘어난 것으로 보인다. 브릭스도 도시 정화 명목으로 술을 마신 애보리진을 알콜중독자로 몰아 가둔 예를 들었다. 호주 정부는 펄쩍 뛰지만 이같은 불평등한 법적용은 통계치로도 나타난다. 호주 인구의 2%에 불과한 애보리진이 재소자의 4분의 1을 차지하며, 죄목으로는 ‘취중 소란행위’가 3분의 1로 으뜸이다.

그렇지만 호주 정부도 할 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선거권 인정(1967), 주무장관 설치(1968) 뿐 아니라토지 소유권 인정(1992) 등 굵직한 조치를 취했다. 또한 ‘애보리진 화해정책’을 꾸준히 내놓고 있고, 올해 환경 교육 고용 등 처우개선에만 150만달러를 쓴다.

극도의 피해의식을 가진 이들은 올림픽을 어떻게 생각할까. 해외 언론에서 보도한 것처럼 ‘백인만의 잔치’로 여길까.

브릭스는 무관심할 수 있지만 반대하는 것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애보리진 대부분은 올림픽 자체를 반대하지 않는다. 우리가 폭력 시위를 벌일 것이라고 정부가 악선전을 해대서 오해하는 것이다. 우리는 해외 미디어를 상대로 평화적인 선전 활동을 벌일 따름이다.”‘천막 대사관’은 올림픽 기간중 인간띠 잇기, 퍼레이드, 전통 페스티벌 등을 벌이고 있다. ‘조상의 땅과 문화에 대한 권리회복’을 주장하지만 200년간 헝클어진 구원(舊怨)의 실타래를 한번에 풀기란 불가능해 보인다.

<시드니〓윤정훈기자>diga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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