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김충식/박상천의원의 ‘행차’

  • 입력 2000년 9월 14일 18시 43분


원님 행차라는 말에는 세도가에 대한 선망과 질시가 담겨 있다. 힘있는 자에 대한 부러움 두려움 그리고 얄미움 같은 것이 배어 있다. 으스대고 가는 품이 너무 그럴듯하다. 그러나 한낱 눌린 자의 입장에서는 ‘너 잘났어’하는 배아픔이 아릿하다. 그 행차에는 나팔도 곁들여 진다. 나팔을 불어 기분을 맞추기에 ‘사또 뜬 뒤에 나팔’이라는 속담도 생겼을 터이다.그런 장단맞추기가 높은 자의 행차에 관한 감정을 더 흔들어 놓는다.

▷원님이나 사또의 시대는 갔다. 하지만 행차의 위세나 수행원들의 자태는 비슷하다. 눈을 치뜨고 어깨를 치켜든 채 호가호위(狐假虎威)하는 모습은 세월이 지나도 변치 않는가.벌써 2400여년전 사람인 장자(莊子)도 그런 수행원의 태도를 꿰뚫어 보았다. ‘내 너를 가르칠 수 있겠느냐. 그렇게 눈을 치뜨고 사람을 대하는 것을 보니’라며 꾸짖은 기록이 나온다. 수행요원의 뻐기기 불친절이야말로 ‘위에는 삽살개 같고 아래에는 사냥개같은’이라는 김지하 시의 한 구절이 생각날 정도다.

▷박상천 의원(민주당 최고위원)이 13일 귀경길에 길이 막히자 경찰 차량의 선도로 다른 차를 제치고 내달렸다는 보도다. 태풍으로 여수공항 비행기편이 막히자 다른 공항으로 빨리 가기 위해 ‘눈총’을 무릅쓰고 질주했다는 것이다. 그날 박의원의 지역구(고흥)에서 서울까지 차로 올라온 사람은 26시간을 허비해야 했다고 한다. 그처럼 너나 없이 길거리에서 장사진을 친 교통 난리속에 호위 차량의 번득이는 불빛과 함께 특별 질주하는 일행을 곱게 보아줄리 없다.

▷예부터 선비의 덕목으로 궁행(躬行)을 빼놓지 않았다. 몸소 실천하여 행하는 것이 그만큼 소중하다는 것이다. 이웃의 어려움과 고통 고난을함께 느끼고 그 타개를 위해 몸을 던지는 ‘궁행’이 책읽기와 어우러져야 선비였다. 질서지키기운동을 선도한 법무부의 장관까지 지낸 박의원의 특별 질주는 궁행과는 멀다. 보이지 않는 특권의식이었다면 더욱 문제다.‘공작새도 제 발 밑을 내려다 볼 때는 깃털을 접는다’고 하거늘.

<김충식논설위원>seeschem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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