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걱정되는 마구잡이식 기업조사

  • 입력 2000년 9월 9일 17시 09분


금융감독위원회가 기업 현장조사권을 새로 갖겠다고 나섰고 공정거래위원회가 한시적으로 갖고 있던 계좌추적권의 연장을 추진하고 있어 재계가 기업활동을 위축시킨다는 이유로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물론 기업의 탈법적 행위는 제재되어야 마땅하지만 자칫 정부의 지나친 조사권 발동이 자유로운 기업활동을 위축시키고 그에 따라 경제가 어려워지는 결과를 가져올까 우려된다.

금감위는 그동안 기업감시 기능을 강화하기 위해 내부적으로 끈질기게 노력해 왔지만 비판적 여론을 의식해 추진을 자제해 오다가 8월초에 발생한 현대사태를 빌미로 이 문제를 다시 들고 나왔다. 당시 금감위는 기업에 대한 현장조사권이 없기 때문에 현대그룹의 임직원을 효율적으로 조사할 수 없었다고 주장하지만 결국 그 권한 없이도 주거래은행을 통한 여신규제로 이 문제를 풀지 않았던가.

순간적으로 아쉽다고 그때마다 권한행사의 폭을 넓히는 수단을 갖겠다는 것은 대표적인 행정편의주의 발상이라고밖에 볼 수 없다.

공정위의 계좌추적권 시한연장 추진 문제도 그렇다. 이 제도는 도입 초기단계에서부터 여러 가지 부작용이 지적돼 논란이 심했다. 그래서 당초 3년으로 계획된 추적권 시한이 국회에서 2년으로 낮춰지고 조사대상 범위도 부당내부거래로 국한된 것이다. 공정위는 법 개정 당시 결코 시한연장이 없을 것이라고 약속해 놓고 시한인 연말이 다가오자 이를 스스로 번복하고 나섬으로써 정부의 신뢰성을 떨어뜨리고 있다.

정부안에 계좌추적권이나 현장조사권 같은 기업감시 권한을 갖는 기관은 검찰 경찰 국세청 금감위 공정위 등 5개에 달한다. 자본주의 체제 아래서 기업이 이처럼 혹독한 ‘관찰’을 받는 곳이 우리나라 외에 어디 또 있을지 궁금하다.

이런 수준의 중복된 조사를 받으면서 기업의욕이 정상적으로 유지되기를 바라는 것은 무리가 아닌지 모르겠다. 시장이 개방된 상황에서 국내기업들이 그런 규제를 받지 않는 외국기업과 어떻게 한자리에서 경쟁을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국민의 경제의식과 경제환경의 변화로 외환위기 이전과 같이 폐쇄적으로 기업을 경영하기 어려워진 것이 현실인 만큼 정부의 기업조사권이나 계좌추적권은 오히려 축소되어야 한다. 소액주주의 권한강화 등 기업감시기능이 향상돼 계좌추적권 없이도 외부에서 기업을 들여다보기가 수월해졌다. 따라서 정부는 기관별 중복 과잉조사 등 각종 기업조사권의 시행상 문제점들에 대한 개선책을 마련하는 것이 순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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