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감위는 그동안 기업감시 기능을 강화하기 위해 내부적으로 끈질기게 노력해 왔지만 비판적 여론을 의식해 추진을 자제해 오다가 8월초에 발생한 현대사태를 빌미로 이 문제를 다시 들고 나왔다. 당시 금감위는 기업에 대한 현장조사권이 없기 때문에 현대그룹의 임직원을 효율적으로 조사할 수 없었다고 주장하지만 결국 그 권한 없이도 주거래은행을 통한 여신규제로 이 문제를 풀지 않았던가.
순간적으로 아쉽다고 그때마다 권한행사의 폭을 넓히는 수단을 갖겠다는 것은 대표적인 행정편의주의 발상이라고밖에 볼 수 없다.
공정위의 계좌추적권 시한연장 추진 문제도 그렇다. 이 제도는 도입 초기단계에서부터 여러 가지 부작용이 지적돼 논란이 심했다. 그래서 당초 3년으로 계획된 추적권 시한이 국회에서 2년으로 낮춰지고 조사대상 범위도 부당내부거래로 국한된 것이다. 공정위는 법 개정 당시 결코 시한연장이 없을 것이라고 약속해 놓고 시한인 연말이 다가오자 이를 스스로 번복하고 나섬으로써 정부의 신뢰성을 떨어뜨리고 있다.
정부안에 계좌추적권이나 현장조사권 같은 기업감시 권한을 갖는 기관은 검찰 경찰 국세청 금감위 공정위 등 5개에 달한다. 자본주의 체제 아래서 기업이 이처럼 혹독한 ‘관찰’을 받는 곳이 우리나라 외에 어디 또 있을지 궁금하다.
이런 수준의 중복된 조사를 받으면서 기업의욕이 정상적으로 유지되기를 바라는 것은 무리가 아닌지 모르겠다. 시장이 개방된 상황에서 국내기업들이 그런 규제를 받지 않는 외국기업과 어떻게 한자리에서 경쟁을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국민의 경제의식과 경제환경의 변화로 외환위기 이전과 같이 폐쇄적으로 기업을 경영하기 어려워진 것이 현실인 만큼 정부의 기업조사권이나 계좌추적권은 오히려 축소되어야 한다. 소액주주의 권한강화 등 기업감시기능이 향상돼 계좌추적권 없이도 외부에서 기업을 들여다보기가 수월해졌다. 따라서 정부는 기관별 중복 과잉조사 등 각종 기업조사권의 시행상 문제점들에 대한 개선책을 마련하는 것이 순서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