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서민 홀대한 세제 개편

  • 입력 2000년 9월 5일 23시 23분


4일 발표된 내년도 세제 개편안에 대한 첫인상은 정부가 서민의 세부담을 덜기보다 세수목표 달성을 위한 징세편의주의에 치중하지 않았느냐는 것이다. 특히 서민생활안정 등 특정 정책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노력이 이번 세제개편안에서 뚜렷하게 부각되지 않은 것은 유감이다. 오죽하면 여당조차 서민대책이 미진하다고 불만을 터뜨렸을까.

기본적으로 간접세 부문의 세율인상이 서민 홀대의 증거라고 하겠다. 담배나 액화석유가스(LPG)는 서민이건 고소득자건 사용자가 똑같은 세금을 낸다는 점에서 세율인상은 덜 가진 사람들에게 상대적으로 불리하다. LPG가 고급승용차에는 사용되지 않는 연료라는 점에서도 서민에 대한 일종의 푸대접성 세율조정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안타까운 것은 외환위기 이후 더욱 확대된 빈부격차 해소를 위한 조치를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는 점이다. 저소득층에 대한 지원이 구조적이고 지속적으로 이뤄지기보다 1회성에 그치고 그나마 관련예산이 삭감된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다. 근로소득자에 대한 세부담 경감을 위해 소득공제의 범위를 확대한 것은 긍정적이다. 그러나 아직도 고소득 자영업자들의 세부담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불공평한 것이 사실이다.

예산의 규모가 올해보다 6조원이나 늘어난 것도 경기가 하강기에 들어섰다는 각종 경제지표들을 감안할 때 걱정스럽다. 정부는 내년 예상성장률을 8∼9%로 잡고 이보다 2∼3%낮은 수준에 맞춰 예산안을 작성했다고 하지만 과연 내년에 희망대로 그 정도의 고성장이 가능할 지는 궁금하다. 특히 경기가 하강할 때는 사회간접자본설비에 대한 투자를 늘려 연관산업에 대한 파급을 유도해야 하는데 이 부분이 오히려 준 것도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더욱 아쉬운 것은 이번 세제개편안과 예산안에서 우리경제의 국가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가장 긴요하게 요구되는 기업의 생산의욕과 근로의욕 고취를 위한 배려가 눈에 띄지 않는다는 점이다. 연구개발(R&D)은 우리의 다음세대가 먹고 살 수단을 마련하는 절실한 과업인데 이 분야에 대한 생산적 투자는 오히려 감소한 것으로 분석된다. 벤처업계를 적극 지원하겠다고 공언하고도 지원예산을 오히려 삭감한 것은 그 사례 중 하나다.

세제개편은 공평한 국민부담의 바탕위에 재정수요를 합리적으로 충족시키는 차원에서 이뤄져야 하며 이때 가장 우선적으로 고려되어야 할 대상은 서민이다. 앞으로 당정협의 과정에서 이같은 문제들이 바로잡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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