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도덕적 해이' 극심…잇따른 대형사고 팔짱만

  • 입력 2000년 9월 3일 19시 20분


경영부실로 막대한 규모의 국민 혈세가 들어갈 공적자금 투입대상 금융기관의 도덕적 해이(모럴해저드)가 극에 달하고 있다.

공적자금 투입을 앞두고 경영개선 노력을 기울여도 모자랄 판에 ‘망하기 전에 일단 챙기고 보자’는 식으로 횡령 및 불법대출을 통한 커미션 수수 등의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금융감독원 등 정부 당국은 올 초부터 준법감시인 제도 등을 통해 금융기관 내부규율을 세우는 데 주력하겠다고 밝혀왔지만 잇달아 발생하는 금융사고 앞에서 속수무책인 실정이다.

▼'공적자금 투입기관' 특징▼

3일 금융권에 따르면 평화은행 지점 간부가 고객의 정기예금을 담보로 대출을 받아 42억원을 횡령한 금융사고가 발생했다. 이 은행 서울시내 S지점 박모차장(40)이 작년부터 고객의 정기예금을 담보로 모두 5차례에 걸쳐 고객 명의로 42억4000만원을 대출받아 개인 용도로 사용한 것. 이에 따라 평화은행은 이날 박씨를 횡령 등 혐의로 서울지검 남부지청에 고발했다.

평화은행은 “사고 금액 중 12억원은 즉시 회수 조치했고 현재 박씨의 은닉 재산을 추적하고 있어 사고금액은 미미할 것”이라고 밝혔지만 금융기관 신뢰도에 치명적인 타격을 입혔다.

평화은행의 사례를 비롯해 최근 한달 사이에 한빛은행 부정대출사건, 중앙종금 고객자금 횡령사건 등 모두 3건의 금융사고가 발생했다. 이들 금융사고의 공통점은 모두 공적자금이 투입됐거나 공적자금 투입을 앞두고 경영정상화방안을 제출해야 할 금융기관이라는 점.

실제 공적자금이 투입됐거나 투입 예정인 금융기관의 직원들은 금융구조조정이 2년여 이상 지속되면서 최근 들어 회사를 살리려는 노력보다 ‘내 살길을 찾고 보자’는 식의 행태를 보이고 있다는 것이 금융권 내부의 지적이다.

▼금감원 감시 소홀도 한몫▼

일부 금융기관은 자체 경영정상화 계획을 마련하라는 정부 당국의 독촉에도 불구하고 별다른 대책을 마련하지 않은 채 “설마 우리를 쓰러뜨리겠느냐”며 공적자금 투입을 통한 경영정상화에만 의지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금융감독원 등 감독당국의 감시시스템 소홀도 이 같은 금융기관 모럴해저드에 단단히 한 몫을 하고 있다. 금감원이 올 초에 도입한 준법감시인 제도는 도입 초기부터 자격요건을 놓고 혼선을 빚다가 최근 거의 유명무실한 제도로 변질되어 버렸다. 이 제도는 사전에 금융기관의 모럴해저드를 방지하자는 취지에서 도입됐지만 은행 임원이 준법감시인을 겸임하면서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금융연구원 관계자는 “공적자금 투입은행의 이 같은 모럴해저드는 정부가 해당 금융기관의 책임을 명확하게 묻지 않는데도 큰 원인이 있다”며 “정부와 금융감독당국이 막대한 국민 혈세가 투입되는 만큼 이 같은 모럴해저드에 대해서는 엄정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말했다.

<박현진기자>witnes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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