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쟁점토론]인터넷 등급제

  • 입력 2000년 9월 1일 19시 22분


《최근 정부가 청소년 유해정보를 차단하기 위해 정보 제공자가 내용물에 자율적으로 등급 표시를 하도록 하는 정보내용등급 자율표시제(인터넷 등급제)의 도입 방침을 밝히자 시민단체와 네티즌들이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킬 수 있다면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이에 대해 정보통신부는 문제가 될만한 일부 조항을 손질한 뒤 인터넷 건전화를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라며 설득하고 있지만 반대론자들은 인터넷 내용을 국가가 관리하겠다는 발상 자체가 위험하고 청소년 보호 효과도 의문시된다며 등급제 도입 방침의 철회를 요구하고 있다. 》

▼찬성▼

인터넷 이용 인구가 8월 현재 세계적으로 약 3억3000만명, 우리나라는 약 1600만명이나 돼 이제 사이버세계는 떼어놓을 수 없는 생활의 일부가 됐다. 인터넷의 급속한 보급은 축복만 가져온 것은 아니다. 적절히 규제되고 통제되지 않으면 사회의 기틀을 뒤흔들 수 있다는 인식이 보편화되고 있다. 인터넷상에 여과되지 않은 채 범람하는 음란 폭력물은 사회적 인내의 한도를 넘어섰다. 이런 유해정보에 청소년들이 무차별적으로 노출돼 있다는 사실은 많은 사람의 우려를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온라인 세계도 하나의 현실이다. 따라서 오프라인 세계와 상응하는 정도의 법과 정의가 지켜져야 한다는 사회적 결단이 필요한 시점이다. 물론 인터넷에 흐르는 수많은 정보를 규제한다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며, 정부의 간섭은 인터넷 산업의 발전이나 표현의 자유를 해칠 우려가 있어 바람직한 것도 아니다.

인터넷상의 불건전 정보를 규제하는 여러 가지 방안이 그동안 제시됐다. 그 중 유력하게 제시된 것은 정보통신서비스제공자(ISP)를 통한 직접적 차단이다. 그러나 이 방식은 인터넷 접속속도를 떨어뜨리고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우려가 있다는 지적이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제시된 것이 정보내용등급 자율표시제(인터넷내용등급제)다. 정보 제공자가 객관적인 등급기준에 따라 자신이 제공하는 정보의 등급을 자율적으로 표시하는 방식이다. 이 방식을 따르면 연령별로 다양한 맞춤정보를 제공할 수 있게 돼 오히려 표현의 자유를 신장시킬 뿐 아니라 이용자가 등급을 보고 적절한 정보를 선택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일부 시민단체들은 정보내용등급자율표시제가 국가검열제도라고 주장하고 있다. 검열이라는 주장이 성립하려면 정보가 유통되기 이전에 국가가 등급을 강제적으로 부과하고 이용자는 이 등급에 구속돼야 한다. 그러나 정부가 추진하는 등급제는 정보 제공자가 자율적으로 등급을 표시하도록 권장하는 것이지, 등급 표시를 강제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청소년 보호법상의 청소년 유해 매체물로 지정된 것에 대해서는 등급표시를 의무화함으로써 이런 정보는 내용선별 소프트웨어를 통해 청소년에 대한 접근이 제한되도록 할 방침이다.

정보내용등급자율표시제가 원칙적으로 등급 표시를 강제하지 않는 민간 자율규제 방식이기 때문에 그 효과에 대해 의문을 표시하는 의견이 있을 수 있다. 등급제를 실시하고 있는 외국의 경우를 보면 시민단체 종교단체 등이 감시단을 구성해 등급이 부적절하게 표시됐거나 등급을 표시하지 않고 유통되는 유해 정보에 대해 비판을 가해 시정시키고 있다. 이러한 방식은 우리에게도 대단히 중요한 수단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정부는 내년 7월 등급제 시행을 목표로 올 하반기부터 시범사업을 실시할 예정이다. 등급제와 관련된 합리적인 비판과 의견은 그 과정에서 적극 수용해 차질없이 시행되도록 할 예정이다.

나봉하(정보통신부 정보이용보호과장)

▼반대▼

통신공간의 음란 폭력물에 대한 규제 문제는 정보통신 네트워크가 급속도로 보급돼 대중화하는 오늘날 세계 거의 모든 나라들이 공통적으로 고민하고 있는 문제다. 네트워크의 미래를 낙관적으로 보는 이들은 인터넷의 쌍방향성이 끊임없이 정보수용자의 능동적 개입과 참여를 요구하고 정보에 대한 식별력을 키워주기 때문에 궁극적으로 유해정보를 이용자 스스로 잘 처리할 수 있게 되리라는 믿음을 피력한다. 새로운 매체에 익숙치 않은 이들에게 이같은 낙관론은 비현실적이고 무책임한 주장으로 들릴 것이다.

그런 이들에게는 통신망을 통해 유통되는 정보들 중에 최소한 어떤 사회적 합의기준에 따라 걸러내야 할 정보가 있을 수 있고, 그런 정보는 어떤 방식으로든 규제를 해야 한다는 주장이 일리있게 들릴 것이다. 그러나 국경이 없는 인터넷 세상에서 다른 나라에 있는 컴퓨터 속의 정보를 규제하는 방법은 없다. 뿐만 아니라 국내 사법관할영역에서도 통신망 안에서 유통되는 유해정보를 모두 규제하려면 인터넷 이용자들의 개인웹사이트까지 샅샅이 뒤져야 한다. 개개인의 표현의 자유가 침해받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것도 그 때문이다.

정보통신부가 도입하겠다는 제도는 정보통신공간의 청소년유해정보에 대한 심의권한을 정통부가 갖겠다는 것이며 그런 방편으로 등급제를 이용하겠다는 것이다. 이미 기존의 대중매체나 도서 만화 영화 비디오 등도 심의를 하고 있으니 정보통신공간에 대해서도 그렇게 하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전통적인 매체들과 달리 인터넷 세계에서는 거의 모든 이용자가 동시에 정보제공자가 될 수 있으니 사실상 모든 네티즌이 정통부의 심의대상이 되는 셈이다. 네티즌들이 이 제도를 사실상의 검열로 받아들이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유해정보에 대한 정책적 대응방식의 하나로 등급제가 선호되는 또다른 중요한 이유는 이 방식이 제3자에 의한 일방적 규제가 아니라 정보제공자나 이용자 모두에게 등급기준의 수용 및 적용을 자율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권한을 주어 표현의 자유 침해가능성을 최대한 줄일 수 있다는 데 있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정통부의 주장처럼 자율등급제가 아니라 사실상은 법적 의무로 강제하는 국가의무등급제의 성격이 짙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통신공간에서 하나의 획일적 기준을 가지고 모든 정보내용을 심의하고 그러한 기준의 적용을 법으로 강제하겠다는 발상은 오늘의 통신네트워크 환경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이용자가 동시에 정보공급자가 될 수 있는 네트워크 환경에서는 특별한 경우가 아닌 한, 이용자의 표현의 자유가 최우선적으로 존중돼야 한다. 등급제를 채택하는 나라들도 비영리적인 정보서비스나 개인이 정보를 제공하는 경우는 제외하고 상업적인 서비스안에서만 자율규제 방식으로 도입하고 있는 이유도 자칫 국가에 의한 시민사회의 보편적 규제라는 함정에 빠지지 않으려고 하기 때문이다.

전응휘(피스넷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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