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정부-현대 '자동차 분리' 氣싸움

  • 입력 2000년 8월 24일 19시 10분


현대자동차 계열분리를 둘러싸고 진행중인 현대와 정부의 힘겨루기로 투자자들만 골탕을 먹고 있다.

정주영(鄭周永) 전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현대차 주식 매각과 현대차 계열분리 신청과정에서 투자자들의 주식 거래정보가 누설되고 신탁재산 손실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현대차측은 계열분리 신청 과정에서 정전명예회장 주식을 사들인 투자자들의 명단을 확인한 것으로 24일 밝혀졌다. 회사 관계자는 “그룹 구조조정본부측과 공동으로 현대차 주식을 매입한 기관 및 개인투자자들의 명단을 검토한 결과 하자가 없다고 판단, 계열분리 신청서를 냈다”고 말했다.

증권가에서는 정상적인 주식거래를 한 투자자들의 명단을 작성, 확인한 것은 공정위와 현대측이 합작으로 금융실명제법의 고객비밀 보호 조항을 어긴 행위라고 보고 있다.

한 증권사 임원은 “문제의 현대차 주식이 결국 어디로 흘러들어갔는지는 나중에 밝혀진다”면서 “빨리 알고 싶다 하더라도 현행법상 불법적인 수단을 동원하지 않으면 확인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공정위의 개인 매수자 명단 제출 요구는 애당초 무리한 주문이라는 얘기다. 한 증권사 정보담당자는 “증권사들끼리는 전화 한 통화로 특정 종목에 대한 개개인의 거래내용을 훤히 알 수 있다는 것은 증권가의 공공연한 비밀”이라며 “이번에 이런 불법적인 관행이 만천하에 드러나게 됐다”고 말했다.

공정위 관계자는 “계열분리를 위한 지분 장내처분은 통상 그대로 인정하고 넘어가지만 이번 현대의 경우엔 계열분리 과정의 투명성에 대한 여론의 요구가 컸기 때문에 확인할 수 있는 한 최대한 확인해 보자는 취지였다”고 해명했다.

한편 투자자들은 현대투신운용이 계열분리 요건을 맞추기 위해 보유중인 현대차 주식을 매각하는 과정에서도 부당한 손해를 입게 됐다.

공정위는 정 전명예회장과 현대투신을 비롯한 특수관계인들의 보유지분을 모두 합쳐 3%로 맞춰야만 계열분리 요건이 충족된다는 입장이다.

현대측은 정 전명예회장의 잔여 지분 3%을 건드리기보다는 현대투신 보유지분을 처분하는 쪽으로 방침을 정했다. 이에 따라 23일 전날 장내에서 순매수한 현대자동차 주식 19만주를 도로 내다팔았다. 이미 보유해왔던 270만주(지분 1.3%)도 조만간 순차적으로 팔아버릴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수백만주의 매물이 대기중이라는 점이 시장에 알려진 이상 투자자들은 현대차 주식을 사지 않을 것이고 이에 따라 현대차 주가는 추가로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나아가 현대차 주가는 계열분리 이후 계열분리 자체를 호재로 해서 크게 오를 가능성이 높다. 이를 감안하면 펀드가입자들의 손해는 더욱 커진다.

리젠트자산운용 김석규(金錫圭)상무는 “투자자들의 돈을 최대한 불리기 위해 사는 시점과 파는 시점을 적절히 선택하는 것이 펀드매니저의 가장 중요한 역할”이라며 “현대투신이 보유물량을 짧은 기간에 기계적으로 처분한다면 현대차 주가 하락은 불을 보듯 뻔하다”고 말했다.

<이철용기자>lc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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