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곽승준/이제는 경제를 생각할 때다

  • 입력 2000년 8월 21일 16시 16분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의 석학 폴 크루그먼 교수는 최근 한국경제에 대한 한 인터뷰에서 재미있는 발언을 하여 화제가 되었다. 한국경제의 빠른 회복을 가능하게 한 요인으로 경제를 잘 운용한 한국정부의 공이 크지 않았느냐의 기자 질문에 오직 10%만 그렇다고 대답한 것이다. 단기 외채 협상을 신속하게 하였다는 점에서는 정부의 공도 크지만 이것은 경제회복 요인으로는 10%밖에 안된다는 설명이었다. 또 다른 10%는 미국 재무부 로버트 루빈 장관의 덕이었다는 것이다. 미 재무부의 압력으로 사실상 한국내 금융기관의 구조조정이 시작되었다는 것을 그 이유로 들고 있다.

하지만 한국경제 회복의 요인으로 가장 큰 나머지 80%는 한국경제가 외환위기를 맞을 이유가 없었다는 점을 들고 있다. 한국 경제에 구조적인 문제가 없지는 않았지만 투기성 공격대상이 될 만큼 심각한 것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보다는 한국의 외환위기는 국제공조 체제의 부족이나, 초기대응 미숙과 같은 정책적 요인과, 정확한 정보를 경제주체들에게 알리지 않았던 정치적 요인에 기인했다는 것이다. 결국 한국의 외환위기는 불필요한 고통이었고 그 어떤 이유로도 합리화할 수 없다는 것이 그의 결론이다. 그의 주장대로라면 외환위기의 요인으로 정책당국과 정치권의 책임이 상당히 있다는 것이다.

그 당시 정치적 상황을 살펴보면 정권 교체기로 접어들면서 사회의 모든 화두와 관심이 오직 정치적 현안에 몰려 있었다. 또 정부의 모든 경제정책도 대선과 관련된 정치권의 논리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즉 경제문제를 정치현안에 밀려 정치논리로 풀어갔다는 것이다.

지금은 어떠한가. 온 나라가 남북문제에 휩쓸려 있다. 정부나 국민 모두 경제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사회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망각하고 있는 듯하다. 경제적으로 중요한 문제들이 산적해 있는데 그 중요성과 우선 순위에서 모두 남북관계라는 정치적 현안에 밀려버린 듯하다.

지난 주 50여년만의 남북 이산가족 상봉으로 온 국민이 들떠 있을 때 우리 경제의 역사라고 할 수 있는 현대가 절박한 상황에서 살아남기 위한 자구책을 발표하였다. 남북경협의 선봉장 역할을 한 현대였지만 경제 현실은 그만큼 냉혹하였다. 또 뜻깊은 이산가족 상봉으로 나라가 온통 눈물바다를 이루고 있을 때 12월 결산법인들의 상반기 영업실적이 발표되었다. 뿐만 아니라 국제적으로는 국내 경제의 저물가 저금리 기조를 일시에 무너뜨릴 수 있는 고유가 행진이 계속되었다. 나아가 의료계 폐업사태로 중병에 걸린 환자가 제 때 치료받지 못하는 전시(戰時)와도 같은 사회 상황도 벌어지고 있었다.

이제는 차분하게 당면한 경제현안들을 다시 살펴볼 시점이다. 최근 우리경제의 실물지표들은 불안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총체적인 금융불안은 계속되고 있고, 급속한 유가인상, 교역조건의 악화 등으로 경상수지 흑자폭은 줄어들고 있다. 또 경기 정점 논란을 일으킬 정도로 경기 상승세는 뚜럿한 둔화 조짐을 보이고 있다. 뿐만 아니라 소비자물가 변동도 심상치 않다.

당장 풀어야만 하는 발등의 불로 떨어진 경제문제들도 산적해 있다. 아직 미해결로 남아있는 현대사태는 언제 우리경제에 직격탄을 날릴지 모른다. 신용경색 현상을 막기 위하여 금융 및 기업 구조조정을 조속히 마무리하여 경제를 새로운 단계로 도약시켜야 한다. 노사관계의 안정도 건실한 경제토대를 위해 중요하며, 점증하고 있는 소득계층간 직종간 갈등도 풀어야 할 시급한 과제다.

경제문제는 정치현안 때문에 미뤄져서는 안된다. 정치논리로 경제문제를 풀어 가면 결국 우리가 지불해야 할 비용만 늘어난다. 나아가 강한 경제기반 없이는 남북 사업도 지속적으로 추진할 수 없다. 이산가족 상봉도 통일의 힘도 모두 우리의 강한 경제력에서 나온다는 간단한 진리를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곽승준<고려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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